종교뉴스]]> <![CDATA[캐나다 한인포털 해피코리아 > 종교뉴스]]> 종교뉴스]]> 종교뉴스 http://happykorea.ca/comm 제공, All rights reserved.]]> Mon, 21 Sep 2020 08:58:10 Mon, 21 Sep 2020 08:58:10 <![CDATA[전광훈 목사 발언 논란에 한교연 "회개·근신·자중을"]]>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권태진 목사, 이하 한교연 )가 최근 발언 논란으로 곤경에 처한 전광훈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고, 전 목사의 회개·근신·자중을 촉구하고 그렇다고 그를 향한 상대 진영의 무분별한 비난은 경계할 것을 요구했다.

한교연은 먼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지난 10월 청와대 앞 집회 중에 '하나님 꼼짝마, 하나님 까불면 죽어, 하나님과 친해' 등 애국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생각 없이 쏟아낸 전 목사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신성모독' 과 이단성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히고, "전 목사가 어떤 의도에서 이런 발언을 했든 이 발언은 목회자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되는 금도를 넘은 것으로 회개하고 근신하고 자중하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이어 "전 목사는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경제 안보 및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애국의 충정에서 선구적인 운동을 전개하는 것에 대하여서 본회는 공감하고 지지한다"고 밝히고, "하지만 평소의 화법이나 교만하게 보이는 언행은 자제하고 겸손함으로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전 목사가 수 개월간 광화문 집회 등을 주도하며 보여준 그의 시국관과 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소신은 개인의 신앙 양심의 자유에 속한 행동이기에 가타부타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 지도적 위치에 있는 목회자로서 한국교회 전체의 위신과 품격을 떨어뜨리는 언행은 반드시 자중하고 또 삼가야 할 것"이라 했다.

또 한교연은 "이번 논란이 전적으로 전 목사가 자초한 일이기에 전 목사의 자중과 지도자로서의 책임 있는 언행을 보여주기를 바라며 주위의 원로들과, 함께 한 이들의 사랑의 교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다면 "애국과 애정없는 인신공격과 좌편향적 적개심, 노골적인 증오감의 표출 은 나라나 교회에 유익이 없으므로 우려하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나아가 한교연은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등 전반의 위기상황을 인식하고 광화문 광장에 모여 영하의 날씨에도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텐트를 치고 철야를 이어가는 이들의 심정을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염려하는 이들이 많은 지금 모든 국민이 하나되어야 한다"면서 "자기 성찰 없이 상대의 잘못을 찾는 전제주의적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상대를 함부로 매도하고 폄훼해도 마치 이것이 진리요, 선 인양 집단최면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우리 사회를 더 큰 위기로 몰아넣는 죄악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 했다.

미자막으로 한교연은 "남의 눈에 티를 보기 전에 네 눈의 들보를 보라"(마7:5),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1)하신 주님 앞에 겸손히 머리 조아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EC%A0%84%EA%B4%91%ED%9B%88-%EB%AA%A9%EC%82%AC-%EB%A7%89%EB%A7%90%EC%97%90-%ED%95%9C%EA%B5%90%EC%97%B0-%ED%9A%8C%EA%B0%9C%C2%B7%EA%B7%BC%EC%8B%A0%C2%B7%EC%9E%90%EC%A4%91%EC%9D%84-854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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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1 Dec 2019 19:42:35
<![CDATA[저출산 시대 한국교회가 들어야 할 복음은]]> 국가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한길교회 손재익 목사의 저출산 관련 설교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손재익
▲손재익 목사.
본문: 창세기 1장 26-30절

 

제목: 생육하고 번성하라

 

서론

 

산아제한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많이 낳아 고생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

1960년대 대한민국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는 구호를 외치며 ‘3·3·35 운동’을 벌였습니다. 3명 자녀를 3년 터울로 낳고, 35세까지 단산(斷産)하자는 뜻입니다.

1970년대는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습니다. 남아선호 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아들을 낳기 위해 출산을 계속하는 현실에 대한 대응으로 나온 표어였습니다.

1980년대는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등의 표어를 내세우며, 인구가 정체기에 들었는데도 산아제한 정책을 계속 펼쳤습니다. 정부는 지난 40년간 ‘아이 적게 낳기 운동’에 전력을 쏟았습니다.

이 정책은 국가의 정책이었고, 국가의 정책은 불신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교인들에게도 수납되었습니다.

불과 4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아니 10년 전부터 저출산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30년이죠.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이제 출산율 0.88명입니다. 초저출산국가입니다.

산아제한(産兒制限) 정책의 피해는 국가만 아니라 교회가 고스란히 입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머리가 하얀 사람들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제가 제일 젊어요.” 50대 초반 어느 도시 교회 담임목사의 넋두리입니다. 교회 안에 청년이 없고, 아이들이 없습니다. 세상보다 교회가 더 심합니다. “신앙교육 제대로 안하면, 유럽 교회 닮아간다”고 불과 십 수년 전에 위기를 말했던 한국교회가 그 위기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산아제한과 반대되는 성경 말씀

이러한 때에 우리는 이 본문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1970년대 한창 국가가 국민들을 통제하던 때, 교회는 말씀보다 국가 정책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 권력자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영원하신 말씀 앞에 복종하기보다, 30년도 유지하지 못할 정책 앞에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어린 아이가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작년에 제가 어린 시절 자란 교회에 갔더니, 2000년대 초반 주일학생이 1,000명이던 교회가 지금은 200명이라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신세한탄을 합니다.

이러한 시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이 명령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본론

I. 본문 해석

 

1.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과 번성을 명령하신 하나님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빛, 하늘과 땅, 바다, 식물, 해와 달, 동물, 물고기, 하늘을 나는 새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여섯째 날에 땅의 짐승, 가축,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만드셨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중에서 ‘사람’의 창조는 다른 창조와 달리 좀 더 강조됩니다. 오늘 읽은 26절부터 30절까지 사람의 창조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그 뿐만 아니라 창세기 2장 4-25절에서 다시 한 번 더 구체적이고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 창조의 순서

창세기 1장만 보면,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바로 ‘생육과 번성’을 명령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1장과 2장에 있는 사람과 관련된 내용 전체를 함께 봐야 합니다. 전체를 토대로 시간 순서를 따라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남자를 창조하셨습니다(창 2:7). 그리고는 남자를 에덴 동산에 두십니다(창 2:8). 그리고 그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십니다(창 2:15; 개역한글). 첫 번째 명령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명령을 내리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명령이죠(창 2:16-17).

그러고 나서 여자를 지으실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여자를 지으시고 나서 남자와 여자를 한 몸 되게 하십니다. 즉 결혼시키시죠(창 2:24).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다 있을 때에 복을 주시면서 명령을 내리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세 번째 명령입니다.

‘생육과 번성’을 말씀하신 세 번째 명령은 시간 순서상으로는 세 번째 이지만, 기록상으로는 첫 번째입니다.

창조명령 두 가지

이 세 가지 명령 중 2번째에 해당하는 선악과 금지 명령은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 관계에서 주어진 명령으로, 행위언약에 관한 내용이죠. 그래서 실제로 오늘날에도 계속될 명령은 2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다스리며 지키라는 것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에덴동산은 성전을 상징하며 궁극적으로 교회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사람은 ①교회와 ②세상에 대해 각각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①에덴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를 지키는 것으로서 교회와 예배를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②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는 것은 세상을 향해 수행해야 할 명령입니다. 그래서 이 명령을 교회 역사에서는 문화명령(The Cultural Mandate)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문화명령의 기초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해야 땅에 충만할 수 있고, 땅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생육(生育)이란 날 생(生)과 기를 육(育)인데, ‘자녀를 낳아서 기르다’라는 뜻이죠. 한 명만 낳아도 생육입니다.

번성(繁盛)이란 많을 번(繁)과 담을 성(盛)인데, 생육을 많이 함으로써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죠. 두 명, 세 명 낳음으로써 번성해집니다. 또한 번성이란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서, 끊임없이 생명이 새로워지고 풍성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낳고, 낳으라는 명령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계속되라는 명령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신자로 하여금 자녀를 낳고, 많이 낳아 땅을 채우고 땅을 정복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2. 생육과 번성을 명령하시기 전에 남녀를 창조하시고 결혼시키신 하나님

하나님은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미리 마련해 주셨습니다.

명령을 주시기 직전에 있었던 일, 결혼

이 명령을 주시기 직전에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앞서 보았습니다만,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창 2:18)”라고 하심으로써 남자를 위한 여자를 지을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여자를 지으시고 난 후 남자와 여자를 결혼시키십니다. 생육과 번성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일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결혼한 후에 “생육과 번성”을 명령하십니다.

명령을 주시기 직전에 있던 일, 남녀 창조

창세기 1장 28절에 이 명령을 기록하면서의 순서도 봅시다. 27절에서 “하나님이 …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리고 나서 28절에서 명령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명령을 주시기 전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남자를 창조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 능력과 자유를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런 의지는 갖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과 자유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는데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둘에게 “생육과 번성”을 명령하십니다.

한 여자만 창조하신 이유

말라기 2장 15절을 봅시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오직 한 명의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하나님은 남자를 창조하신 뒤 한 명의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경건한 자손이 이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두 명의 여자도 창조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라는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개역한글은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라고 번역했는데, 바로 그런 뜻입니다. 유여(有餘)란 남을 유, 남을 여죠. 하나님께서 여자를 하나 더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그럴만한 힘이 남아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만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는 한 여자가 한 남자와 만나 한 몸을 이뤄 경건한 자손을 얻기 원하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말라기 2장 15절은 후손을 낳는 것이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와 보람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남녀가 하나 되어 가정을 이루게 하신 목적이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임을 보여주고, 결혼한 부부에게 있어서 자녀 생산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말씀들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 둘을 결혼시키신 것이 곧 “생육과 번성”이라는 문화명령과 관련있음을 보여줍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말하는 결혼과 출산

결혼과 출산의 관계, 그것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4장 제2절도 말씀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4장 결혼과 이혼에 관하여

2.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돕기 위해서(창 2:18) 합법적인 방식을 통한 인류의 번성과 거룩한 자손들을 통한 교회의 확장을 위해서(말 2:15) 부정(不貞)을 막기 위해 제정되었다(고전 7:2, 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결혼의 목적을 세 가지로 말씀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합법적인 방식을 통한 인류의 번성과 거룩한 자손들을 통한 교회의 확장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근거구절이 바로 앞서 보았던 말라기 2장 15절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로 하여금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게 하셨고, 결혼을 통해 인류의 번성과 거룩한 자손을 통한 교회의 확장을 명하셨습니다. 즉 생육과 번성을 명하셨습니다.

사람 창조, 남녀 창조, 생육의 연관성

사람을 창조하신 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일은 그와 더불어 주어진 명령인 ‘생육과 번성’과 연관됩니다. 생육과 번성은 오직 ‘남녀의 존재’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공식 결합인 결혼, 그리고 그 열매로서의 출산은 생육하고 번성케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이를 통하여 그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새 생명이 태어나 생육하고 번성케 됩니다.

3. 생육과 번성을 통해 창조와 구속을 이어가는 사람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생육과 번성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구속 사역을 이어갑니다.

생육법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지금도 창조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지금 어떻게 사람을 창조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흙으로 만드십니까?

여러분들을 흙으로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 그 창조는 단 두 명에 대해서만 이뤄졌죠. 그 이후의 창조는 어떻게 이뤄집니까?

부부가 수행하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에 대한 실천을 통해 이뤄집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과 여자만 직접 만드셨고 그 이후의 사람은 두 사람을 통해 계속되는 생육법을 통해 창조 사역을 이뤄가십니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사실상 사람의 생육과 번성을 통해 반복됩니다.

족장들의 명령수행

이 명령은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 주신 명령이지만, 타락 이후에도 계속 반복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하나님은 홍수로 온 세상을 심판하신 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시면서 노아와 그 아들에게 아담과 여자에게 주셨던 동일한 복과 명령을 주십니다.

이 명령과 복은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먼저 아브람에게도 번성을 약속하십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창 17:1-6)”.

창세기 28장 1-3절을 봅시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창 28:1-3)”.

 

공원 어머니 소녀 엄마 어린이 유아 풍경 트리 임신 가족 재미 아기 자손 저출산
▲ⓒ픽사베이
1절에 보면 이삭이 야곱을 불러 축복하면서 결혼을 하라고 합니다. 결혼을 위해 외삼촌 라반에게 보내기에 앞서, 3-4절에서 축복하면서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창 28:3)”.

나중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창 35:11)”.

창세기 48장을 봅시다. 야곱이 죽기 얼마 전 요셉이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 므낫세와 함께 야곱에게 갔습니다. 이 때 야곱이 요셉에게 말합니다.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창 48:3-4)”.

족장들의 중요한 사명은 생육이었습니다. 생육을 통한 번성이었습니다. 결혼과 출산이 족장들의 삶 가운데 계속 되었습니다.

4. 해산을 통한 구원

 

타락 이후 고통이 더해진 생육

생육하라는 명령은 창조 후 타락 전에 주어진 명령입니다. 그런데 그 명령이 타락 이후에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타락 이후 더욱 강화되었고, 이제는 오히려 고통이 주어졌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을 봅시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생육의 고통, 번성의 고통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아무도 고통 없이 출산하도록 만드셨지만, 결국 아무런 고통 없이 출산할 수 있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최초의 출산자인 하와조차 고통 가운데 출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명령은 계속 수행돼야 했고, 수행되었습니다.

해산을 통한 구원

다음으로 디모데전서 2장 15절을 봅시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해산하면 구원받는다?’ ‘아니, 믿음으로 구원 받는게 아니라 해산으로 구원 받는 건가?’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지요. 이 말씀을 개인 구원으로만 이해하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조금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이 말씀 바로 앞에 나오는 11절 이하의 이야기를 잘 보십시오. 창조와 타락 이야기를 하지요. 그리고 방금 보았던 창세기 3장 16절의 두 가지 측면의 징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니다. 남자에 대한 순종과 해산.

어려운 말씀이지만 최대한 쉽게 해석하자면, 여자의 범죄로 인하여 온 인류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남자에게 순종해야 할 의무가 강화되었고, 출산의 고통이라는 저주가 주어졌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여자들은 낙심하기보다 오히려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며, 특히 해산, 즉 출산을 통해 인류 전체에 미친 죄악들을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여성의 출산은 인류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하나님의 저주와 징계를 극복하여, 하나님의 창조 이전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출산이라는 일이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정해 놓으신 상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것을 하나의 소명으로 여기라는 의미입니다.

창조와 구속의 명령

이렇게 생육과 번성은 창조 직후 신자에게 주어졌고, 타락 이후 신자에게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생육과 번성은 창조의 명령이면서 또한 동시에 구속의 명령입니다.

II. 적용

 

생육하고 번성하라

사랑하는 한길교회 형제, 자매 여러분~! 신자와 교회는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결혼하여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신혼 부부들은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결혼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타락 이후 이 명령의 수행이 쉽지 않습니다.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창 3:16)”. 수고하여 믿음으로 이 명령을 순종해야 합니다. 순풍 순풍 낳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낳아야 합니다. 고통 중에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타락 이후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창 3:19)”라고 하신 하나님의 저주가 우리에게 있기에 땀을 흘리며 노동을 감당하듯, 고통과 수고 가운데 자식을 낳아야 하더라도 우리는 생육과 번성의 명령,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사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육과 번성이 멈춘 시대에

오늘날 우리에게는 첫 조상의 죄악으로 인한 어려움만 있는게 아닙니다. 설교 서두에 말씀드린 정부 정책의 영향이 우리의 세계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시대입니다.

생육과 번성이 멈춘 문화를 살고 있습니다. 생육의 두 주체 중 한 주체인 여성들의 편안함이 우선시되는 시대입니다. 이런 문화들은 불신자들뿐 아니라, 신자들에게도 아주 깊숙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우리는 생육과 번성을 해야 합니다.

먼저 생육과 번성이 멈춘 문화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4년 전인 2005년의 합계출산율은 1.08명이었는데, 점점 줄어서 0명대에 진입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출산율 0명대 국가가 됐습니다.

2018년 합계출산율은 0.98명입니다. 2019년 11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기사에 따르면 2019년 3/4분기 출산율은 0.88명입니다. 1년도 안 되어 또 줄었습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130조의 출산장려 예산이 사용되었지만, 극복되지 않습니다. 이미 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정책과 돈으로 바뀌진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입니다. 세상은 어쩔 수 없습니다만, 교회는 그래서는 안 되죠.

세상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라지면 안 됩니다. 불신자들이 생육을 멈춘 시대에, 오히려 신자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보다 국가 정책을 더 따랐던 교회마저 정책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생육의 두 주체 중 한 주체인 여성들이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시대입니다. 11월 18일 경기도가 도민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비혼, 즉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남성이 꼽은 1위는 출산·양육 부담(32%)이었습니다. 이어 과도한 주거 비용(29%), 개인의 삶·여가 중시(17%), 이상적인 배우자를 못 만남(7%) 등의 순이었습니다. 여성은 개인의 삶·여가 중시(26%)를 가장 많이 꼽았으며, 다음으로 과도한 주거 비용(21%), 출산·양육 부담(20%), 이상적 배우자 못 만남(12%)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생각보다 ‘형편이 어려워서’는 적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삶과 여가를 중시하는 자기 중심적 생각이 하나님의 명령을 이기고 있습니다.

생육과 번성은 믿음의 일이다

출산하지 않는 문화, 출산하기 어려운 현실, 출산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이 시대의 담론들, 이 모든 것들을 볼 때 신자에게 생육과 번성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믿음의 일입니다. 현실과 세속의 가치와 문화를 당당히 거슬러야만 감당할 수 있는 사명입니다.

세상 풍조가 우리시대의 젊은이들, 자녀들을 엄습해서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도 우리는 생육과 번성을 해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은 하나님의 고귀한 명령입니다. 생육과 번성의 명령은 오늘날 인구가 줄어서 지켜야 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국가가 강조하기 때문에 행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그와 상관없이 지켜야 할 말씀입니다.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서 지키는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지켜야 할 명령입니다.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농담 비슷하게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하죠. “전도 못하면, 애를 많이 낳으십시오.” 그 말을 웃으면서 농담처럼 하다 보니, 사람들이 다 농담으로 여깁니다. 실제 그 말을 하는 사람도 약간은 그런 마음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육과 번성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농담처럼 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젊을 때 결혼해야 하며, 그리스도인 부부는 하나님께서 힘 주실 때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생육과 번성이 어려운 현실과 형편

이 가운데 이런 마음이 드는 청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요즘 청년들의 형편을 모르십니까?” 왜 모르겠습니까? 요즘 청년들을 3포 세대, 5포 세대를 넘어 N포 세대라고 하죠.

저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꼰대처럼, “우리는 너희보다 더 어려웠어” 혹은 “저기 아프리카에 가봐. 너희보다 더 어려워도 많이 낳아”라는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불신자라면 모르겠지만 신자라면, 우리의 형편과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는 핑계가 되지는 않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자세히 봅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 하나님은 명령을 주시기 전에 먼저 복을 주시고, 그 다음 그들에게 생육을 명령하십니다.

이렇게 명령하신 뒤에 또 다시 이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창 1:29)”.

먹을 거리를 주셨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그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형편과 환경을 조성해 주셨습니다.

첫 사람의 생육과 번성을 위해 하나님은 남자에게 돕는 배필을 허락하셨고, 남자와 여자를 한 몸되게 하셨고, 그들에게 복을 주신 뒤, 생육과 번성을 명하셨고, 그 뒤에 먹을 거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 시대의 형편과 현실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상대적이요, 핑계나 변명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생육과 번성의 어려움은 우리 시대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역사에서 생육과 번성의 어려운 현실은 또 다른 형식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바로 영아의 죽음입니다.

 

저출산 baby down born pregnant pregnancy
ⓒpixabay
아시다시피 현대의학이 발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태어나서 1년이 안 되어 죽는 사람이 엄청 많았습니다. 1350년 영아 사망률은 22%였고, 기대수명은 24세였습니다.

 

1750년 영아사망율은 20% 정도였고, 기대수명은 35세 정도였습니다. 1820년 영아사망율은 15% 정도였고, 기대수명은 40세 정도였습니다.

영아사망율이 1%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현대의학이 발전된 20세기 들어와서지요. 오늘날에는 형편이 완전히 달라져 의미가 바뀌었지만, 백일잔치가 바로 이런 의미를 갖고 있죠. 백일잔치는 유아 사망률이 높던 시절, 100일 동안 안 죽고 살아 있는 것을 감사히 여기며 가진 잔치죠.

영아의 죽음도 많았지만, 성인이 되기 전까지도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신자의 자녀들 가운데 번성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한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신자들에게 생육과 번성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당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버린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문제가 이유가 되었으니, 이러한 이유는 신자가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이유들입니다.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교회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출산이 성경의 명령이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수단 중 하나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 안에 형제, 자매들이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낳은 자녀를 우리 모두가 함께 기르며, 건물에 투자하기보다는 사람에 투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불임과 난임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성경 한 구절을 보겠습니다.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눅 1:5-7)”.

사가랴와 엘리사벳,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잉태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습니다.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생육과 번성에 대한 말씀을 들었는데, 이 부분을 강조하다 불임이나 난임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이 명령을 수행하고 싶으나 이뤄지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괜히 자신의 죄는 아닌가 걱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든지, 그들 앞에서 우쭐댄다든지 하는 것은 신자라면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생육과 번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지만, 우리의 힘과 노력만으로 가능한 명령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결론

교회마다 위기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까? 교회가 세상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시되, 너희는 자녀를 낳고 많이 낳아 번성해 땅에 가득 채워라. 땅을 정복하라(私譯)”.

이 말씀은 분명 성경의 첫 장에 기록되어 있고, 사람에게 주신 세 번째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에 기록되어 있어서 사실상 첫째되는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강단에서 이 말씀에 대한 교훈을 찾기 어렵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른바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인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만 강조했지, 문화명령은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1980-90년대 교회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는 구절만이 강조되었습니다. 창세기 본문보다는 사도행전 설교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도행전이 강조되던 교회가, 어느새 창세기를 돌아보아야 할 교회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이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짐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도리어 지상명령을 수행할 사람이 줄고 있습니다.

신학대학원에서는 미달 사태가 발생하고, 선교사의 고령화는 심각해지며, 주일학생은 찾아보기 힘들고, 교회 안에서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워졌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생육하십시오. 번성하십시오. 땅에 충만하십시오. 이 말씀은 오늘날에만 유효한 말씀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7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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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1 Dec 2019 19:40:07
<![CDATA[예배 끝나고… 유튜브로 다른 교회 설교 또 듣는 이유]]>
듣기 싫었던 ‘공부’의 잔소리, 지금은 듣기 싫도록 한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 하신 말 중 가장 듣기 힘든 말이 있었다. “공부하라”다. 이 말로부터 졸업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뒤도 아니었다. 스스로 독서하기 시작한 뒤였다.

부모님 마음에 들게끔 공부를 하지 못하다 보니, 중학교 3년 동안 밤마다 아버지의 지나친 관심(?)을 받았다. 아버지께서 밤 10시까지 함께 필자의 방에 계셨다.

그때 필자는 책장을 넘기고 있었지만, 머릿속에 책의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감시받는 아들이라는 불만과 탈출구를 생각해내는 잡생각만 가득했다. 어려서 그랬는지, 아버지의 행동을 ‘사랑’이 아니라 ‘감시’로 받아들였다.

그때는 대학만 졸업하면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신학교에 입학하자, 또 다시 입시 지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공부를 해야 했다.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면, 더 이상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이는 착각이었다. 필자의 설교를 들은 뒤, 아내의 ‘공부하라’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그때도 아내의 잔소리를 ‘사랑의 잔소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자의 목회에 대한 참견으로 받아들였다. 아내의 잔소리는 공부 대신 영적 활동에 몰입하게 했다. 틈만 나면 성경 읽기와 기도, 그리고 심방 등에 전념했다.

아내의 공부에 대한 잔소리는 끝날 줄 몰랐다. 듣기 싫은 말을 또 들어야 하니 무척 괴로웠다. 결국 두 손과 두 발 다 들고,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게 된 진짜 이유는 저의 목회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교인들이 설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을 이제 아트설교연구원 회원 설교자들에게 한다.

‘자신의 지적 능력을 성장시키십시오.’ ‘설교자는 공부와 함께 해야 합니다.’ ‘설교를 잘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독서광들입니다.’ 하지만 소수만 공부를 하며 목회를 한다.

공부, 가장 힘든 일 중 하나

필자를 비롯한 설교자들이 왜 공부를 하지 않는가? 공부는 가장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공부는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가장 큰 이유는 원하는 결과가 더디게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설교가 목회에 전부는 아니지 않나?”

그 말은, 공부가 목회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아주 적다는 말이다. 설교가 목회의 전부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청중에게는 설교가 거의 전부를 차지하기도 한다.

청중들을 만나면 매 번 듣는 말이 있다. “은혜가 넘치는 설교를 듣고 싶다.” “말이 되는 설교였으면 좋겠다.”

출석 교회 설교자의 설교에 만족하지 못하니, 청중들은 시간만 나면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 방송을 틀어놓고 듣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은혜가 되는 말씀을 들어야, 세상을 힘 있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어떤 분의 차를 탔더니 한 유명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물어보니 은혜가 되는 설교를 듣지 않으면, 영적 갈증으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이런 말을 하면, 설교자들은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마음밭’ 상태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이 말도 맞다. 그렇다고 설교자가 설교를 잘 전해야 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청중들은 설교에 목을 매다시피 한다. 작금의 상황이 이러니, 설교자들은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설교자는 교회 지도자이므로, 마땅히 공부해야 한다. 문제는 설교자들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공부가 어렵기 때문이리라.

어떤 설교자들은 극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공부를 많이 하면, 목회는 언제 하느냐고.

목회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목회를 하면서 공부하라는 것이다. 필자는 설교자에게 ‘공부만’ 하라고 하지 않는다. ‘공부를’ 하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대부분 공부를 안 해도, 너무 안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하나다. 공부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맛있는 밥 먹고, 좋은 사람들과 카페에서 대화하고,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혼자 청승맞게(?) 공부하는 것은 어렵다. 싫다.

공부하기 어려울지라도, 해야 한다. 성경을 알려면, 역시 공부해야 한다. 성경을 딱 맞게 설명하려 해도 공부해야 한다. 새벽 예배 설교를 하려면 공부해야 한다. 주일 예배 설교를 하려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세상의 리더들은 공부하는데…

세상의 리더들은 어떤가? 공부와 평생 함께한다. 세상과 교회에서 유명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공부하지 않고 리더가 된 사람이 없다.

소크라테스, 어거스틴, 칼빈, 루터,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세종 대왕, 율곡 이이, 마틴 로이드 존스, 찰스 스펄전, 유진 피터슨, 옥한흠, 팀 켈러 등은 평생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사들에게 백성들을 위해 공부하자고 했다.

이지성 작가는 “부자들은 인문학 공부를 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설교를 잘 하고 싶은 사람들은 인문학과 신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야 한다.

오늘도 아트설교연구원 한 회원의 전화를 받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에 치중하면, 설교자가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덜 하게 된다. 하지 않아도 되는 행동보다, 해야 될 행동을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설교자는 어떤가?

설교자들은 어떤가? 필자가 10년간 설교자들을 가르친 경험으로 볼 때, 많은 설교자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아도 목회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나라 목회 문화와 설교자들의 그러한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목회가 행정, 심방, 정치, 관계 등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회’만으로도, 너무 바쁘다. 그러니 공부할 여력이 없다. 하지만 공부하는 설교자들은 우선순위를 공부로 둔다.

설교자가 공부하지 않으면, 교인들도 잘 안다. 주위에서 ‘우리 교회 담임목사는 공부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를 종종 듣는다.

공부하지 않아도, 어차피 하루 24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나 공부하면, 자신의 목회에 있어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목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

책 《완벽한 공부법》에서, 공저자 공영성과 신영준은 공부에 대해 아래와 같은 말을 한다. “공부는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그들은 덧붙여서 말한다. “돈은 나누면 반이 된다. 공부는 나누면 2배가 된다. 돈에는 로또가 있지만 지식에는 로또가 없다.”

제임스 클리어 그의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습관은 복리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저는 공부도 복리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공부가 가져다주는 힘은 엄청나다.

필자가 회원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설교자들이 공부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대박을 칠 수 있다.”

아마 이 말이 듣기 불편한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만큼 공부가 주는 효과가 크고, 많은 설교자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설교자라면 공부해야 한다. 공부는 설교자를 엄청나게 성장시킨다. 설교를 탁월하게 하도록 만들어준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그의 책 《트렌드코리아 2020》에서, 2020년 트렌드 중 하나를 ‘특화생존’이라고 말한다. 즉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면, 특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젠 보편적으로 괜찮은 것보다, 선택된 소수에게 확실한 만족을 줄 수 있도록 특화시켜야 하는 시대다.

목회 현장도 마찬가지다.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설교에 있어 특화돼야 한다. 즉 특출난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의 시인·극작가·정치가·과학자.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중요한 일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공부가 설교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설교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설교로 증명해 보이는 사람이다.

목회의 다른 영역도 중요하다. 하지만 설교자에게 설교를 성장시키는 공부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설교자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자신이 설교를 잘 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설교자로서 날마다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교자에게 공부는 중요하다. 그러므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침해당하도록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특출난 설교가로서 목회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회, 자신이 만족하는 목회를 할 수 있는 문을 열게 된다.

 

김도인 아트설교연구원
▲김도인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김도인 목사/ 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7378]]>
Wed, 11 Dec 2019 19:39:19
<![CDATA[살인미수 가해자 용서한 부부의 아들, 건강 크게 호전]]>
3층 쇼핑 몰에서 떨어져 뇌출혈과 합병증을 앓던 5살 소년, 랜든 호프만이 최근 크게 회복된 소식을 전했다.

 

 

랜든 호프만은 지난 4월 12일 임마누엘 아란다(24)에 의해 12m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이후 법정에 선 아란다는 “누군가 죽일 사람을 찾았다. 본래 어른을 살해할 계획이었지만, 어린 소년을 택했다”며 살인미수죄를 인정했고, 19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사건으로 뇌출혈과 합병증을 앓게 된 호프만은 기적적으로 회복되고 있었다. 소년의 가족은 최근 기금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를 통해 “완벽하게 걷고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소년의 가족은 지난 8월 병원을 퇴원했고, 지속적인 약물 치료와 물리치료, 재활 훈련을 해왔다. 현재 그의 상태는 곧 약물 치료를 그만둘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다고 한다.

그의 가족은 “랜든에게 상처가 괜찮은지 물으면 ‘엄마, 나는 치료됐어, 더 이상 내게 물어 볼 필요가 없다’고 답한다. 랜든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며 “또 랜든은 항상 ‘걱정하지 말라’며 ‘나는 절벽에서 떨어졌지만, 천사들이 나를 잡아주었다. 예수님은 날 사랑하신다’고 말하곤 한다”고 했다.

이어 “전 세계 사람들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랜든은 우편으로 받는 모든 편지를 사랑한다”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줘서 정말 감사드리고, 치유되는 동안 완전한 회복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린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전했다.

한편 소년의 부부는 법정에서 가해자를 용서하는 성명서를 발표해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당시 부부는 “당신이 착하고 순진한 어린 아이에게 이런 일을 하기까지는 당신에게 정말 나쁜 일들이 있었을 거다. 당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유감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구원하실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언젠가 알게 할 것이라 소망한다”며 “나는 내가 당신을 용서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용서를 하는 이유는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당신의 행동이 괜찮았기 때문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7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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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4 Dec 2019 17:28:12
<![CDATA[꾸미는 인생이 아니라, 가꾸는 인생이 됩시다]]> 외줄타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외줄 위에서 중심을 잃는 순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외줄타기를 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은 외 줄 위에서 중심을 잡는 훈련입니다. 외줄타기뿐 아니라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바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심이 바로 잡혀 있지 않으면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고 무너지게 됩니다.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요즘은 매스미디어가 발달되어서 언론 기관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모릅니다. 언론 기관이 중심을 잃고 잘못된 보도를 내보내면, 사회 전체가 큰 혼란을 가져 오게 됩니다.

운동 경기를 하는데 있어서 감독이 중심을 잃어버리면, 선수들이 경기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심을 잃어버리면 한 순간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교회도 중심을 잃어버리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멋이 아니라 맛을 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캐나다 컨넥서스교회의 캐리 뉴호프(Carey Nieuwhof) 원로목사님은 온라인 매체인 ‘처치 리더스’에 2017년 교회가 주의해야 할 6가지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물론 캐나다 교회의 현실과 한국교회의 현실은 좀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국교회가 지금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할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6가지 중에 두 번째는, 멋있기만 한 좋은 교회는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멋있기만 한 좋은 교회는 한 마디로 중심을 잃은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맛을 내야 하는 교회가 멋만 내는 교회가 되면 사라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한국교회 현실을 바라보면서 조금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까?

한국교회가 언제부터인가 맛을 내기보다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더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프로그램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는 어려운 현실 가운데 놓여 있고,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다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멋이 아니라 맛을 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단정지으셨습니다. 곧 너희는 세상의 소금으로 만들어져 가야 존재가 아니라 이미 세상의 소금이 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세상의 소금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으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소금의 맛을 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뿐 아니라 나는 이미 세상의 소금이라는 자존감을 가지고 맛을 내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소금처럼 살아야, 황금처럼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금이 세 개가 있다고 합니다. ‘황금’, ‘소금’, ‘지금’입니다. 그 중에서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고 합니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지금 어떤 일을 하며’, ‘지금 어떻게 행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어떻게 사느냐가 결국 나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곧 ‘지금’ 이 순간을 '소금'처럼 살아야, ‘황금’처럼 귀하고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금의 역할

소금을 연구하는 분들에 의하면, 소금은 귀한 본질을 가지고 귀한 역할을 감당한다고 합니다.

첫째, 소금에는 대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수박이나 설탕이나 단팥죽에 약간의 소금을 넣으면 더 달아지는데, 이것이 대비 효과라는 것입니다.

둘째. 소금에는 억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초밥이나 초무침에 약간의 소금을 넣으면 신맛이 덜하게 되는데 이것이 억제 효과라는 것입니다.

셋째, 소금에는 응고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장어나 생선을 구울 때 소금을 치면 고기가 탱탱해지고 육질이 쫀득쫀득해 지는데, 이것이 응고 효과라는 것입니다.

넷째, 소금에는 방부 효과가 있습니다. 음식은 어디에 두어도 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소금을 치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거나 늦추게 되는데, 이것이 방부 효과입니다.

다섯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맛내는 효과가 있습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음식은 간이 맞아야 맛이 있습니다. 소금이 너무 많으면 짜고 너무 모자라면 싱겁게 됩니다. 적당량의 소금이 들어가야 음식이 제 맛이 납니다.

소금의 여러 가지 본질 중에서 특별히 주님께서 맛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은, 소금의 본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맛을 내는 것이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이 소금에 대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맛나는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멋이 아니라 맛을 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왜 우리는 멋이 아니라 맛을 내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맛과 멋은 비슷한 것 같지만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원적(語源的)으로 볼 때, ‘멋’이 ‘맛’에서 연유했다고 보는 것은 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원적으로 그럴지 몰라도, 맛과 멋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맛이 속이라면, 멋은 겉입니다. 맛이 내면이라면, 멋은 외면입니다. 맛은 진실이라면, 멋은 포장입니다. 맛은 숙성반이고, 멋은 속성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맛을 내는 삶보다, 멋을 내는 삶을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요? 맛을 내는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멋을 내는 데는 별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맛은 숙성에서부터 나옵니다. 곧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멋은 잘 꾸미기만 하면 됩니다.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맛을 내기 보다는 멋을 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맛과 멋의 승부에서는 맛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아도, 같이 지내보면 그 사람이 맛을 내는 사람인지 멋을 내는 사람인지 다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멋을 내는 사람은 한두 번 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이 알아차립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버려지게 된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시면서, 그 뒤에 한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마 5:13)”.

예수님께서는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가에 버려지고 사람들에게 밟히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이 아무리 멋을 부려도, 맛을 잃으면 더 이상 소금이 아닌 것입니다. 소금이 소금 될 수 있는 것은 맛입니다. 맛 잃은 소금은 아무 쓸모없이 바깥에 버리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식당은 결국 맛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대구 수성구에 들안길이라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얼마나 다양한 식당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수많은 식당들이 즐비하지만, 계속 대를 이어 장사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문을 닫는 음식점들도 많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맛입니다. 맛있는 집은 계속 장사가 잘 되지만, 맛이 뒷받침 안 되는 집은 문을 닫게 되어 있습니다.

음식집은 맛으로 승부하는 곳이지, 멋으로 승부하는 곳이 아닙니다. 전국에 이름난 맛집을 보면, 멋에 많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멋진 인테리어와 멋진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맛만 있으면 그 집은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그렇다고 제가 멋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멋과 맛이 어우러지면 더욱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명품을 걸친다고 명품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다

명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분명 명품은 그 값어치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명품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비자들을 통해 값어치가 증명되었고, 명품의 역사가 또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는 명품에 대한 가치 때문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명품 가방을 들고 명품 옷을 입으면 내가 명품 인생인 것처럼 생각이 들어서 명품을 구입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명품 가방을 들고 명품 옷을 입는다고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명품 인생’이라고 인정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명품을 부러워하지 말고 명품 인생이 되라

군인들이 휴가를 나올 때 입는 옷은 부대 안에서 입는 옷과 다릅니다. 휴가 나올 때 입는 옷은 아껴두었다가 휴가 나올 때만 입습니다.

그리고 휴가 나올 때 입는 옷은 휴가 나오기 전에 군대 말로 ‘각’을 잡습니다. 줄이 선명하게 새겨지게끔, 바지에도 윗옷에도 겉에 입는 야상에까지 각을 잡습니다. 심지어 풀을 먹여서 각을 잡을 때도 있습니다. 같은 군인들끼리는 각을 잘 잡은 것을 보면 때로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군인들이 군복에 ‘각’을 잡는 이유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입니까? 민간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군대에서 군인 외 사람들을 민간인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민간인들은 군인들이 ‘각’을 잡았는지조차 모릅니다. 다 같은 군복이고, 그 군복을 멋있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군인들은 민간들이 ‘각’을 잡고 나가면 나를 멋있는 군인으로 봐줄 것이라는 기대로 그렇게 힘든 일을 합니다.

명품을 부러워하는 인생이 되지 말고, 내 삶이 명품 되어야 합니다. 당당하고 멋있고 매력 있는 이 시대의 명품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명품 인생을 살면, 비록 시장표 가방을 메고 시장표 옷을 입어도 명품으로 보입니다. ‘메이드 인 차이나’를 입어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명품을 사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명품 인생을 살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 되신 장영희 교수님이 쓰신 ‘내가 살아 보니까’라는 글 가운데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란 것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꾸미는 인생이 아니라, 가꾸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겉으로 폼 잡는 인생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를 원하십니다. 멋을 내는 인생이 아니라, 맛을 내는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삶은 맛을 내는 삶이었다

예수님은 멋을 내는 삶이 아니라, 맛을 내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 오실 때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말 밥통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목수 요셉의 아들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나사렛 촌에서 시골 청년으로 성장하셨습니다.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도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 중심이 아니라, 주로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어부 출신이었고, 세리 출신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면서도 멋진 백마가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군병에게 온갖 희롱을 당하시고 침 뱉음까지 당하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도 발가벗긴 채 달리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삶은 멋을 내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은, 맛이 나는 삶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말 밥통에 태어나셨을 때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을 때도, 로마 군병들에게 조롱을 당하셨을 때도 발가벗기 채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도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떤 멋을 부리지 않아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맛을 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기에, 예수님은 우리 또한 멋 부리며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맛을 내는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맛을 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맛을 내는 인생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 예수님의 맛을 내야 합니다. 곧 우리 삶 가운데 예수님의 맛이 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맛을 낸다는 것은,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본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맛을 내며 살아야 합니다. 작은 예수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 땅 교회들이 하나님 백성들과 세상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날의 교회들의 모습 속에 예수님이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데, 그 속에 예수님의 모습이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식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생활을 제대로 해야 한다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결혼생활이 아닌, 결혼식 때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두 사람이 사랑을 하면 함께 살고 싶어 결혼식을 하게 됩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신랑 신부는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고 준비합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이 되면, 두 주인공은 모든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결혼합니다.

두 사람이 사랑을 해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은, 끝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출발입니다. 결혼식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부부로써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예수님의 신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과 결혼식을 올릴 때,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의 감사와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과 결혼식을 올렸다면, 신랑 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만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결혼식의 향수에 취해 있고,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은, 이제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예수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결단이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결혼식을 올린 우리는 결혼생활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맛을 내야 합니다. 작은 예수로 살아야 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

바울은 예수님의 신부로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삶의 이유가 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다움의 맛을 내야 한다

둘째, 자기다움의 맛을 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담 이래 지금 까지 이 땅 가운데 태어나서 죽은 사람들과 지금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제껏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쌍둥이가 똑같은 것 같아 보이지만, 쌍둥이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독특한 걸작품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하나님의 걸작품이야’ 라고 자기만의 렌즈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끼워준 렌즈를 통해 세상의 가치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절하(平價切下)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렌즈들은 잘못된 렌즈이기에, 벗어 던져야 합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는 분은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아닙니다. 가장 친한 친구도 아닙니다. 나 자신도 아닙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렌즈를 가지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우리를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시 않으십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최고의 독특한 걸작품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신 달란트대로 자기다움의 맛을 내기를 원하십니다.

모델이 필요하지만 모델과 똑같이 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본받고 싶은 모델이 필요합니다. 분명히 그 모델의 좋은 점을 본받아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과 똑같이 되려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과 똑같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울과 똑같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환경 가운데 주신 은사대로 나답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보면 ‘한 배에서 나왔는데 어찌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싫으신가요? 다 똑같기를 원하시는가요? 그렇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그 모습 그대로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결이 있다

히말라야 고원지대에 살고 있는 라다크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호랑이의 무늬는 밖에 있고 사람의 무늬는 안에 있다.”

라다크 사람들은 호랑이의 무늬를 보면서 자신들 안에도 ‘무늬’가 있음을 생각한 것입니다. 통찰력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고유의 무늬가 있습니다. 그 무늬는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습니다. 이어령 박사님은 ‘무늬’ 대신 ‘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이어령 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결’이라는 접미어는 보통명사에 붙어 특수한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인데, 인체에도 물건에도 많이 붙게 된다. 살에 결을 붙이면 ‘살결’이 되고 마음에 결을 붙이면 ‘마음결’이 된다. 숨 쉬는 숨에 결을 붙이면 ‘숨결’이 되고 물에 결을 붙이면 ‘물결’이 된다.

물건이나 생명 그리고 마음과 생각에 존재하는 일정한 흐름과 고유한 무늬, 일관된 질서와 특성이 바로 결이다. 모든 개체에는 그 결이 있고, 결을 지니고 있는 것은 길에 굴러다니는 돌이라 해도 이 지구에 하나밖에 없는 고유한 존재 가치를 갖는다. 이 결이 있어야 사람들은 그야말로 ‘한결같은’ 자신의 삶을 유지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결이 있습니다. 그 결이 바로 나다움입니다. 그 결을 우리가 발견하고 그 결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잘 사는 것은 나답게 사는 것이다

흔히 인생의 선배들이 인생을 잘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인생을 잘 사는 것은 다름 아닌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재영답게 살 것입니다. 다른 어떤 목사님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이재영 목사답게 살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답게 사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맛을 잃어버리고 멋을 부리며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의 소금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그 소금의 맛을 내면서 살라고 하시는 것이지 맛을 잃어버린 채 멋을 내며 살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이 세상 가운데 예수님의 맛을 내며 살아야 합니다. 나다움의 맛을 내며 살아야 합니다.

 

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이재영 목사]]>
Wed, 4 Dec 2019 17:26:07
<![CDATA[그가 한서 남궁억의 삶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 새벽 남궁억은 뭉이의 부축을 받으며 유리봉으로 올랐다.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소나무들이 가벼이 흔들리며 청아한 솔향을 뿌렸다. 그 중엔 남궁억이 오래 전에 심었던 어린 묘목이 우람하게 자라나 하늘을 향해 푸른 잎을 흔들고 있기도 했다.

남궁억은 유리봉 꼭대기의 흰 바위 앞으로 갔다. 바위 옆에는 까마득히 먼 옛날 어느 이름 모를 선조가 심었는지도 모를 늙은 솔이 구부정한 허리로 서 있었다. 몸은 비록 늙어 비틀어졌을지언정 가지에 달린 솔잎은 그 고상한 정신의 표현인 양 푸르렀다.

그는 늙은 소나무를 가만히 쳐다보며 굽은 등줄기를 천천히 어루만지고 나서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모았다.

“주여, 핍박받는 우리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보살펴 주옵소서. 그들의 영혼을 저 푸른 나무들처럼 쑥쑥 자라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식민지의 땅에서 받은 울분을 이겨내고, 뿌리는 땅속에 굳건하되 하늘을 향해 푸른 잎을 흔들게 하소서.

주여, 고통받는 우리 젊은이들의 정신이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 한바다에 이르게 보살피옵소서. 그리하여 악의 나라로부터 받은 굴욕을 스스로 벗어나 그 정신이 푸른 바다처럼 파도치게 하소서.

그리고 주여, 한 많은 우리 조선 백성들의 마음이 태양과 샛별처럼 스스로 빛나게 도우소서. 수많은 원한과 억울함을 용광로처럼 활활 태워 밝은 한마음으로 승화시켜서 온 인류의 어둠을 밝히게 하소서.”

남궁억은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동녘 하늘에 얼굴을 방금 씻은 듯 맑고 밝은 해님이 어둠을 걷어내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스름에 묻혔던 산이 점점 초록빛을 되찾아갔다.

푸른 산을 이룬 소나무와 참나무, 자작나무, 칡나무, 옻나무 등 온갖 나무와 풀이 저마다의 힘으로 서서 태양이 빛나는 하늘을 향해 자라 오르고 있었다.

 

보리울의 달 한서 남궁억
▲소설 <보리울의 달> 저자 김영권, 제작 키아츠 <보리울의 달>은 한서 남궁억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한서 남궁억 선생의 소설화된 파란만장한 인생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통찰하도록 안내한다. 만화 <한서 남궁억> 저자 김재욱, 그림 최현정, 제작 키아츠 <한서 남궁억>은 남궁억 선생의 위대하고도 큰 뜻을 남녀노소 모든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만화로 표현한 책이다. 남궁억 선생이 여러 등장인물과 역사를 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실감나고 흥미롭게 담겨 있다.
푸른 노트를 다 읽은 나는 표지를 덮는다.

 

그새 잉크가 많이 번지고 앞뒤 장의 글자들이 서로 얽혀 마지막엔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노트 속엔 필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다.

이름 모를 그 사람은 왜 이런 글을 썼다가 세검정 아래의 사천계곡(沙川溪谷) 물속에다 던져 버렸을까? 단순히 술에 취해 객기를 부린 것 같지는 않았다.

잘 모르긴 해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불에 태워 버리기는 할지언정 물에 던져 시체처럼 둥둥 떠내려가게 하지는 않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고의적으로 개굴창에 처던져 행인들의 한 가닥 탄식이나마 자아내고자 한 것일까? 세검정 아래 계곡 물은 예전엔 한없이 맑았을지 몰라도, 요즘은 닭이나 쥐의 시체가 떠도는 썩은 물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본래 산에서 발원하여 세속으로 내려오는 계곡 물은 현실 세상의 청탁을 알려 주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혹시 그 사람은 점점 추악하고 부패해져 가는 이 세상의 현실에 절망하여 일부러 자신의 피땀으로 쓴 작품을 썩은 개굴창에 던져 넣고는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어느 깊은 산속으로 떠나가 버렸는지도 몰랐다.

대학 시절에 ‘한국 교육의 역사와 철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는 나는 한서 남궁억 선생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분이 일본 경찰에 끌려가 그토록 모진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또한 무궁화를 사랑하여 대한민국의 나라꽃이 되도록 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동안 그분의 높은 정신은 다 잊어먹고, 보리울에서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39년에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만 고작 컴퓨터처럼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청렴결백한 성품을 가진 분이 만약 요즘 세상에 돌아온다면 어떻게 살아갈지 나는 잠시 상상을 해보았으나 잘 되지 않았다.

한서 선생은 살아 생전에 무궁화가 아름답게 핀 삼천리 강산을 꿈꾸었지만, 아마도 겉으로만 화려한 게 아니라, 속으로도 진정한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어 모든 국민이 행복한 그런 나라를 소망했으리라 싶었다.

푸른 노트의 주인은 아마 한서 선생이 지금 이 세상에 온다면 너무 혼탁해서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판단했는지도 몰랐다.

식민지 시대엔 적이 누군지 분명했으나 지금은 오리무중 속에서 누가 적인지 친구인지 분간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향해 혼자 데모라도 하듯이 자신의 노트를 던져 버린 것일까?

나는 푸른 잉크로 얼룩진 그 노트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가 그냥 정자 위의 탁자에 놓아두기로 했다. 내가 갖고 갈 필요는 없었다. 지나가던 다른 어떤 사람이 잠시 쉬면서 읽어 보고 특별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다시 정처 없이 걷는다.

길섶의 매화나무 가지에 달린 희고 붉은 꽃송이가 눈을 인 채 피어나고 있다. 꽃샘바람이 불자 눈가루와 꽃잎이 분분히 떨어져 날린다. 좀 큰 흰 꽃잎이 비스듬히 떨어져 내린다.

그러나 땅에 닿기 전에 그것은 다시 위로 천천히 날아 올라간다. 그건 꽃잎이 아니라 나비이다.

나비는 힘겹게 날갯짓을 해 꽃잎에 겨우 달라붙자 파르르 떨어댄다. 조금씩 기어오르려 애쓰지만 기진맥진해 곧 떨어질 듯하다. 그래도 나비는 큰 눈으로 하늘을 보며 날개를 간신히 파닥거리면서 가느다란 앞다리에 힘을 모아 꽃잎 위로 오른다.

 

김영권 남궁억
▲본지에 <꽃불 영혼>에 이어 <보리울의 달>을 연재하고 있는 김영권 작가.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 원고 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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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4 Dec 2019 17:24:54
<![CDATA[한국인 선교사, 터키서 괴한의 공격으로 사망]]>
한국인 김진욱 선교사가 19일(이하 현지시간) 터키 디야르바키르시 남동쪽 거리에서 괴한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고 국제기독연대(International Christian Concern, ICC)가 20일 전했다.

 

 

이에 따르면, 김 선교사는 괴한의 칼에 가슴과 등을 3차례 찔렸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나이 41세.

관계 당국은 16세 용의자를 체포한 뒤,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터키에서 5년 동안 생활해 온 김 선교사는 올해 초 가족들과 함께 디야르바키르에 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소규모의 기독교 공동체의 목양을 담당하고 있었다.

현지 관리들은 용의자가 김 선교사의 휴대폰을 훔치려고 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지 기독교인들은 분명한 암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김 선교사는 아내와 1명의 아들을 두고 있으며, 둘째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장례 예배는 21일 열릴 예정이다.

ICC에 따르면 김 선교사는지난 2007년 지브르 출판사(Zivre Publishing House)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3명의 기독교인이 순교한 이후 터키에서 살해된 첫번째 기독교인이다.

한편, 지난 3년 동안 터키 내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한 박해와 위협 등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터키는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가 특별우려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ICC 중동 지역 담당자인 클레어 에반스(Claire Evans)는 “이번 사건으로 터키 기독교인들 안의 슬픔이 충격, 두려움과 함께 강하게 느껴졌다. 터키에서 순교는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이 사건은 슬플게도 오늘날 이 나라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보여준다. 올해만 해도, 기독교인들을 향한 적대감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주는 큰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우리는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하며, 이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의 평안이 유가족들과 함께 하길 기도한다. 또 당국이 종교적 관용의 공적인 선례를 남길 수 있기를, 법대로 정직하게 사건을 수사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6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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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Nov 2019 16:52:41
<![CDATA[구리 시청 앞에 나온 학부모들 “외설적 성교육 반대”]]>
구리다음세대를위한학부모연합이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매일 오전 8시 30분 구리 시청 앞에서 ‘청소년성문화센터’ 설립 및 운영 반대 집회를 개최 중이다.

 

 

집회에 참석한 다음세대를위한학부모 연합 대표는 “지난 9월 구리시 다문화센터는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동성애뿐만 아니라 제3의 수많은 성을 인정하는 여성가족부 산하의 성평등 교사가 진행하는 성문화 교육을 했다. 학부모는 학부모 참여와 강의 내용, 공개 등을 요구했지만 하나도 수용되지 않았고, 성교육을 강행했다”며 “우리 학부모는 여성가족부 산하의 성평등 성교육과 성평등센터를 절대 원치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한 가정은 남자가 아빠고 엄마가 여자인 것이 당연하다. 이것은 국가 헌법 36조에도 명시돼있는 말이다. 건강하고 건전한 성 윤리와 가치를 교육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런데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성평등 성교육안은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인정하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심지어는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일부다처제 등 이 모든 가정의 형태를 인정하라는 것인가? 학부모는 아이가 어떤 내용으로 성교육을 받는지 알아야 한다. 시민들은 다문화센터나 학교에서 도덕과 윤리, 생명이 살아있는 성교육을 가르치지 않고 그릇되고 왜곡된 외설적인 성평등 성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밖에 집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 “헌법 36조 2항 모성의 보호에 대해 무시한 다문화센터 퇴진하라”, “다양한 성 정체성을 인정하는 성문화센터 건립 반대”, “구리시 세금으로 내 아이 죽이는 성교육 반대”, “성 욕망 자극하는 성평등 교육 OUT”, “동성애 퍼뜨리는 성 평등의 위험한 성교육 NO”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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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Nov 2019 16:51:56
<![CDATA[비와이 1인 기획사에서 ‘데자부 그룹’ 론칭]]>
1인 기획사 체제로 운영하던 래퍼 비와이(BewhY)가 ‘데자부 그룹 (Dejavu Group)’을 정식 레이블로 런칭하고 21일, ‘비앙(Viann)’의 ‘Golden Fleece’를 소개했다. 비와이는 비앙의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20일, 데자부 그룹의 공식 유튜브 채널 및 본인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데자부 그룹의 공식 레이블화를 알린 비와이는 “아시는 분도 계실테고 모르는 분도 계시겠지만, 현재까지는 독자적으로 제가 제 팀을 구성해서 지금까지의 음악적 행보를 이어왔다. 1인 기획사를 하면서 2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여러가지 음악적 행보를 계속 해왔는데, 제가 가진 것을 혼자서만 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아직 세상에 멋진 아티스트들, 빛을 보지 못한 아티스트들과 제가 가진 이 팀을 더 크게 만들고 싶은 꿈을 이루고자 1인 기획사를 공식적으로 레이블화 시키려고 이 자리에서 말을 전하게 됐다”며 “계속해서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음악적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비와이는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갖고 지난 2014년 싱글 앨범 ‘Waltz’로 공식 데뷔해 정규앨범 ‘The Blinde Star’와 ‘The Movie Star’를 발매, ‘가라사대’, ‘Day Day’, ‘Forever’ 등의 히트곡을 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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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Nov 2019 16:51:08
<![CDATA["총신대학교 성희롱 사건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총신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여서, 자신들을 가르치던 교수 다수가 ‘성희롱’을 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학생들이 대자보 형식을 통하여 주장하는 바는, 당사자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사죄하고, 합당한 징계절차를 통해 책임질 것, 수업권 보장을 위하여 대책을 마련할 것, 처리과정을 대내외적으로 공개하고 매뉴얼을 구축할 것 등을 주장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성 희롱’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면서, 상당히 사회적인 문제로 이슈가 되고 있다. ‘성 희롱’에 대하여 <시사상식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성에 관계된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 굴욕감 등을 주거나 고용상에서 불이익을 주는 등의 피해를 입히는 행위’라고 정하고 있다. 또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상대편의 의사에 관계없이 성적으로 수치심을 주는 말이나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타인의 인격과 손상되기 쉬운 감정을 존중하고, 노골적으로 성적 수치심이 들도록 하는 언행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뚜렷한 기준보다는 상대적인 감정에 의하여 ‘성희롱’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서 그 시비가 좌우된다는 것이 아쉽다.

총신대에서 학생들이 자기들을 가르치는 스승의 강의 중 표현들이 ‘성희롱’이라서 그 교수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징계를 요구하는 내용을 살펴보아도, ‘성희롱’을 위한 목적하에서 표현된 것이 아니라, 강의를 위해 생물학적, 과학적인 내용으로 표현된 것들도 ‘성희롱’으로 몰아간다면 학생들이 유효적절하게 강의를 듣게 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당사자들 가운데 여러 번에 걸쳐서 학생들에게 ‘사과’했다는 보도를 보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도 상대편이 ‘성희롱’으로 받아들일 표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유일하게 반박하는 성명을 낸 이상원 교수의 해명을 살펴보면, 모든 강의 내용을 ‘성’과 관련이 있다고 하여 ‘성희롱’으로 공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총신대생들이 ‘피해자’이며, 동시에 권리를 쥐고(해당 교수들의 징계, 학교에 대한 요구 등) 있는 상황인 듯하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는 학생들이 자신들을 가르치는 스승인 교수들에 대하여 학교에 책임과 징계를 요구했다면,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먼저 언론에 공개하고 외부에서 신학대를 공격하는 것은 선지학교 공동체의 명예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

두 번째는 강의를 위한 과학적인 근거와 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성희롱’으로 몰아, 스승의 교수권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성희롱’의 개념은 이런 것까지도 무제한적으로 제동을 걸고 있다고 본다. 학생들은 지식으로뿐 만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 특히 성경적 기준에 의한 배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세 번째는 총신대학교가 다시 한국교회에 근심을 끼치고, 이미지를 실추하는 행위를 자제해 주기를 바란다. 잘 알다시피 총신대 내부의 문제 때문에 한국교회에 입힌 상처는 컸다. 이제 총신대가 총장이 바뀌면서 회복 단계에 있어 지금은 그 과정과 결과가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그리고 총신대학교에서도, 이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되, 급진적 페미니즘 차원이 아닌, 가르침과 배움의 선을 분명히 하고, 성경적 가르침이 분명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빛이 되는 젊은 지성을 회복하기 바란다.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EC%B4%9D%EC%8B%A0%EB%8C%80%ED%95%99%EA%B5%90-%EC%84%B1%ED%9D%AC%EB%A1%B1-%EC%82%AC%EA%B1%B4-%EB%AC%B4%EC%97%87%EC%9D%B4-%EB%AC%B8%EC%A0%9C%EC%9D%B8%EA%B0%80-853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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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1 Nov 2019 16:50:26
<![CDATA[ 인권 ‘강제북송 사건 책임규명 및 정책 개발 세미나’ 열린다]]>
최근 정부의 북한 청년 2인에 대한 ‘강제북송’에 대한 각계 각층의 규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주민 강제북송 사건 책임규명 및 정책 개발 세미나’가 오는 28일 오후 2시 30분(사전등록 2시) 국회 제2세미나실에서 개최된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소장 윤여상 박사와 과거청산통합연구원(ITJI) 원장인 김웅기 변호사가 각각 ‘북한주민 강제북송 사건 책임 규명과 제언’, ‘북한이탈주민이 북한에서 범한 범죄행위의 한국에서의 처벌과 정책 제언’을 주제로 발제한다.

이밖에 권은경 대표(열린북한, 북한반인도범죄철폐연대 사무국장), 강철환 대표(북한전략센터), 제성호 교수(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한명섭 변호사(법무법인 통인)가 토론한다.

한편 (사)북한인권정보센터는 그간 북한인권침해 실태조사,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운영을 통한 북한인권침해 기록 DB구축 및 관리를 해왔고, 과거청산통합연구원은 북한 인권 이슈 등으로 인해 과거 청산 사례를 연구해온 단체다. 이번 세미나는 국회의원 백승주와 (사)북한인권정보센터의 공동주최로 진행된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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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20 Nov 2019 17:51:16
<![CDATA[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풍랑을 주시는 이유]]>

고통총량 불변의 법칙

‘고통총량 불변의 법칙’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이 법칙은 ‘비서처럼 하라’라는 책을 쓰신 조관일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법칙입니다.

‘고통총량 불변의 법칙’은 ‘한 사람이 일생 동안 경험하는 고통의 총량은 불변하다’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한 사람이 일생 동안 겪어야 하는 고통의 양은 결국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정해져 있기에 일생을 살면서 정해진 고통은 다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고통의 정량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젊어서 어려움을 많이 경험한 사람은 인생의 후반부에서 삶의 보람과 가치를 만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젊어서 별다른 고생 없이 살아온 사람은 인생의 후반부에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 부자들은 인생의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또한 감당해야 하는 고통들이 있습니다. 인생 전반에 걸쳐 한 사람이 경험하는 고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인생은 그 고통을 결국 감당해내야 합니다.

횡단보도가 없는 길은 육교를 통해 건너가게 됩니다. 육교로 가면 올라갈 때 힘들지만, 내려갈 때는 힘이 들지 않습니다. 육교가 아닌 지하도를 선택하면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내리막이라 쉽게 갈 수 있지만, 나중에는 오르막이라 힘이 듭니다. 결국 육교로 가든 지하도로 가든 길을 건너는 데 필요한 고통의 총량은 동일합니다.

물론 육교와 지하도를 선택하지 않고 무단 횡단을 감행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할머니들은 무단 횡단을 가감 없이 감행하십니다. 무단 횡단을 하면 별 어려움 없이 길을 건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단 횡단을 하다 교통경찰한테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무단 횡단을 하다 달려오는 차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사고를 당하면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

우리의 인생에 이렇게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이 적용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인생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오르막을 오를 때 너무 좋아하고 교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생의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 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닥까지 내려갔다 해서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닥까지 내려갔으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밑바닥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항해다

인생은 항해와 같습니다. 배가 항해를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방향을 잃어버리면 배는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배의 방향을 잡는 것은 바로 나침반입니다. 나침반이 없던 시절에는 해와 달을 보고 방향을 잡기도 했습니다.

배가 바른 방향을 잡아서 항해를 한다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풍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항해 가운데 풍랑을 만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만이 풍랑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풍랑을 만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 가운데서도 믿음이 약한 사람만 풍랑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도 풍랑을 만납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탄 배도 풍랑을 만났지 않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풍랑을 만나면 어떠한 태도를 보입니까? 풍랑 자체가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생각지 못한 풍랑을 만났을 때 원망하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풍랑을 만났을 때, 생각을 좀 달리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탄 배도 풍랑을 만났다면, 우리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풍랑 앞에서 원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유라굴라 광풍을 만나다

바울이 타고 가는 배가 ‘유라굴라’라는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이 광풍으로, 배에 탔던 모든 사람들은 살 소망을 잃어버릴 정도로 큰 고통을 겪습니다.

지금 바울은 이 배를 타고 로마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 신분으로 로마에게 가고 있지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를 향해 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향해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로 가고 있다면, 풍랑을 안 만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평탄하게 순항하도록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바울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풍랑을 주시는 이유

하나님께서 우리가 인생을 항해하는 가운데 풍랑을 주시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려는 목적지로 더 빨리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목적지로 더 빨리 인도한다 해서, 꼭 시간상으로 빨리 인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의 풍랑을 만난다는 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풍랑으로 인해 목적지에 더 빨리 갈 수 있다면, 우리는 그 풍랑을 감당해내야 합니다.

나폴레옹에게 가난은 풍랑이었다

코르시카 귀족이었던 나폴레옹의 아버지는 어려운 형편에도 아들을 귀족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곳 학생들은 가난한 나폴레옹을 조롱하며 놀림거리로 삼았습니다.

참다 못한 나폴레옹은 아버지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편지를 썼지만, 아버지는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답장을 보냅니다. ‘돈은 없지만 너는 반드시 그 곳에서 공부해야 한다’.

아버지의 단호함 앞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 후로 나폴레옹은 5년의 시간을 참고 버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 자신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이겨나겠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나중에 군대에 들어간 나폴레옹은 여자와 도박에 빠져 있는 다른 동료들과 달리, 홀로 도서관을 지키며 자신과 싸웠습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면서 스스로 그리던 미래를 준비하고 자신의 재능을 온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결심을 다졌습니다.

이런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금세 상관이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훈련장을 책임지는 업무를 맡겼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남다른 성과를 올리며 새로운 기회를 얻었고, 권력을 잡을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자 예전에 그를 멸시하고 조롱했던 자들이 모두 몰려와 다시 그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충성스러운 부하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나폴레옹이 인생의 큰 성공을 맛볼 수 있었던 계기는 그의 불우한 형편 때문이었습니다. 가난은 그의 인생에 풍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난 때문에 철없는 부잣집 아이들과 어울리는 대신 더 뛰어난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통해 약점을 극복해 끝내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가난이라는 풍랑 때문에 자신의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풍랑으로 인해 총리가 된 요셉

요셉이 형들의 손에 팔려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것은 요셉의 인생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풍랑입니다. 이 풍랑으로 인해, 요셉의 인생의 배는 자초하는 것 같았습니다.

요셉은 한 순간에 사랑받는 아들에서 종으로 그 인생이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노예 생활을 충실하게 감당함으로 인해, 보디발 장군의 가정 총무가 됩니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30살의 젊은 나이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30세 젊은이가 애굽이라는 대제국의 총리가 된다는 것이 상상되십니까? 그것도 자국민이 아닌 히브리 민족의 종 출신이요, 강간미수범으로 감옥에 갇혔던 죄수가 애굽의 총리가 된다는 것이 상상이 되십니까?

요셉은 17살에 애굽의 노예로 팔려와 10년간 노예생활을 하고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뭄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가족들뿐 아니라 애굽사람들과 그 주변 사람들은 구원해 냅니다.

요셉의 인생 가운데 형들에게 시기를 받고 애굽으로 팔려가는 풍랑이 없었다면, 어떻게 30세 나이에 대제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런 위대한 일을 이루어 낼 수가 있었겠습니까?

‘어려운 우환이 있을 때는 살지만, 생활이 안락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역경은 사람을 각성시키고 노력하게 하지만, 지나치게 편안한 환경은 의지가 꺾이게 만듭니다. 이런 이유로 안락함과 평안함 누리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찬송가 373장 2절 가사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시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이 곡 작사자는 큰 물결이 일어나는 풍랑으로 인해 힘들고 때로 쉬지 못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 풍랑으로 인해 빨리 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람을 만날 때 더 높이, 더 멀리 날 수 있다

어렸을 때 연을 만들어서 날려 본 적이 있습니다. 연을 언제 날려야 높이 날아오릅니까? 바람이 불 때입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아무리 연줄을 잡고 힘껏 달려가도 잠시 올라가는가 싶다가 추락하고 맙니다. 하지만 바람이 부는 날은 연줄을 잡고 달려갈 필요도 없습니다. 바람을 잘 이용해서 연줄을 잘 조절하기만 하면, 연은 높이 높이 날아갑니다. 연은 바람을 만날 때 더 높이 멀리 날 수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이, 그리고 가장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새는 ‘알바트로스’입니다. ‘알바트로스’는 ‘바보새’라 불리우는 새입니다. 날개가 너무 크고 움직임이 둔해서, ‘바보새’라는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하지만 폭풍우 치는 날이면 알바트로스는 가장 높이, 가장 멀리 나는 새로 변합니다. 그 이유는 큰 날개를 펼치고 그 폭풍우에 자신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알바트로스가 가장 높이, 가장 멀리 날 수 있는 새가 될 수 있는 것은 폭풍우 때문입니다.

인생의 항해 가운데, 풍랑을 만나신 분이 계십니까? 그 풍랑으로 인해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우십니까? 하지만 더 풍랑으로 인해 우리의 목적지로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인생 가운데 풍랑을 만나면, 그 풍랑으로 인해 목적지에 더 빨리 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 가운데 풍랑을 만났다고, 그 풍랑이 모든 사람들을 목적지로 빨리 인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그 풍랑으로 인해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풍랑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한다

첫째, 이들은 풍랑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였습니다.

바울이 탄 배가 만난 ‘유라굴라’라는 광풍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 광풍 앞에서, 배에 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광풍이 하루 이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 도 별 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행 27:20)”.

광풍이 얼마나 심했는지, 여러 날이 지나도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어둠만 계속됐다고 말씀합니다. 배에 탄 사람은 아예 ‘죽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바울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면서, 이 풍랑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서 응답해 주십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행 27:23-24)”.

이런 응답을 받은 바울이 이 광풍 앞에서 두려워하겠습니까?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 풍랑가운데 어떻게 구원하실지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광풍 앞에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바울은 아시아에서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고난이 얼마나 심한지, 사형 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죽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때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심한 고난을 당하게 하셨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은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경험을 하였기에,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였습니다. 그 풍랑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니, 하나님께서 그 풍랑가운데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 풍랑가운데 은혜를 주셨습니다. 믿음을 더 견고케 하셨습니다. 그 풍랑으로 인하여 목적지로 더 빨리 인도해 주셨습니다.

풍랑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라비안 교도

대서양을 횡단하기 위해 배를 타고 항해하는 도중, 웨슬리가 타고 있는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돛이 산산 조각나고, 배에 물이 들어와 웨슬레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배 한 켠에서 모리비안 교도 25명이 조용히 찬송을 부르고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평안한 것을 웨슬레는 보았습니다. 평안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놀라웠고, 너무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아니요 참으로 감사할 일이죠.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그래도 부인들과 어린애들은 무서울 게 아니겠습니까?”
“천만에요. 비록 아녀자라도 죽는 것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죽으면 천국 가게 될 것인데 무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웨슬레는 이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고, 구원받은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저런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풍랑을 맞이하지만, 그 풍랑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만 하고 있는 사람은 그 풍랑 때문에 더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고통 가운데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그 풍랑 앞에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풍랑으로 인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풍랑은 가장 귀한 것을 발견하게 한다

둘째, 이들은 풍랑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풍랑이 깊어질수록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이 탄 배가 광풍을 만나자 사공들이 어떻게 합니까? 짐을 바다에 풀어버립니다. 풍랑이 점점 더 심해지니까 이제는 배의 기구들을 내버립니다. 나중에는 먹어야 할 밀까지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입니까? 살기 위해서입니다. 풍랑이 더 거세어질 때,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필요한 것은 다 버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풍랑 속에서 무엇보다 그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가장 소중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공들이 자기들만 도망가려고 구명선을 내려놓을 때, 바울은 백부장과 군사들을 설득해 모든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공들을 붙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백부장과 군사들은 바울의 말대로 구명선의 줄을 끓어버립니다.

우리는 풍랑이 오기 전까지는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당연히 옆에 있을 줄 알았던 가족을 잃어버리고서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아내가 감상선 수술을 해서, 제가 아내의 빈자리를 메꾼 적이 있습니다.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했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를 지키면서 아내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자리는 당연한 자리가 아니라, 나의 삶에 너무나도 귀한 자리였습니다. 또 사람들은 풍랑을 만나고 나서야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신앙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풍랑으로 인해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풍랑을 만났을 때 육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함을 깨달아야 할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하는 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할 것이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야 할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요, 천국입니다.

1845년 영국의 한 탐험대가 북극해를 건너는 바닷길을 발견하기 위해 대탐험을 시작했습니다. 철저한 훈련으로 준비된 탐험 대원들은 필요한 물품을 배에 가득 싣고 새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배가 광활한 북극해에 도달했을 때, 대원들은 어이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료가 남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원들이 배의 창고를 확인해 보니 그 안에는 연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뜻밖의 물건들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1,200여권의 장서와 사기로 된 접시, 크리스탈 컵과 장교의 이름이 적혀 있는 은식기 등 온갖 사치품들만 가득했습니다.

이것은 배를 지휘하던 프랭클린이라는 장교가 새 항로를 개척해 다른 나라에 도착하면 사절품으로 사용하려고 가져온 사치품이었습니다.

탐험대원들은 연료가 바닥난 배가 곧 가라앉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는, 모두 썰매를 이용해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이 장교는 썰매 위에 은식기를 하나라도 더 실으려고 몸부림치다, 결국 은식기 때문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영생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육신의 생명은 어떤 귀한 것보다 소중합니다. 육신의 생명을 잃어버리면 내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지만 육신의 생명하고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영생입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은 영생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다 누리고 살았다 할지라도, 영생을 얻지 못했다면 그는 가장 귀한 것을 놓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할지라도 영생을 얻었다면 가장 소중한 것을 붙잡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풍랑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이,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 영원한 생명이요 천국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풍랑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풍랑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풍랑으로 인해 더 빨리 목적지로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맹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늘에서 사람에게 큰일을 줄 때에는 반드시 그들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몸을 수고롭게 하며 굶주리고 궁핍하게 만들어 하는 일마다 틀어지게 한다. 이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인내심을 기르게 하고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일들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은 잘못을 해야 고칠 수 있으며 마음속에 고민과 걱정이 있어야 힘을 낼 수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맹자도 하늘에서 사람에게 큰 일을 줄 때에는 반드시 그들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수고롭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힘들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풍랑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시기 위함입니다. 더 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목적지로 더 빨리 인도해 가시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풍랑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영생을,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재영 목사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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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20 Nov 2019 17:50:29
<![CDATA[국민들 다수, '정치편향 교육의 조사와 조치' 주장 공감]]> 국민들 대다수가 최근 고교 학생들에게 특정 정치관을 주입한 의혹이 제기된 ‘인헌고 사태’에 대해 알고 있으며, 다수는 ‘정치편향 교육의 조사·조치’ 주장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정치 편향적인 교육, 비전문성 교육감 후보자 문제 등으로 현행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다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오피니언코리아가 지난 15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유선 및 무선 자동응답 전화조사를 실시한 결과, ‘인지’응답이 79.0%(잘 알고 있음 41.6%, 어느정도 들어봄 37.4%)로, 10명 중 8명은 ‘인헌고 사태’ 대해 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혀 모른다는 ‘미인지’는
21.0%였다.

 

교사의 정치편향성 발언 논란이 불거진 ‘인헌고 사태’를 놓고 교원단체들의 상반된 주장 중 공감되는 의견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정치편향 교육은 학습권을 침해하고, 명백한 위법 행위이므로 교육부와 교육청이 이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주장을 국민들 57.2%가 찬성했다.

반면 "극소수 학생들의 선동과 부추기는 세력이 학생들의 정상적인 학습을 저해하고 있어 원칙적인 절차를 밟고 학교를 정상화 시켜야 한다"는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연맹) 주장이 28.8%로 집계됐다. ‘잘 모름’은 14.0%였다.

국민들 대다수가 최근 고교 학생들에게 특정 정치관을 주입한 의혹이 제기된 ‘인헌고 사태’에 대해 알고 있으며,  다수는 ‘정치편향 교육의 조사·조치’ 주장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정치 편향적인 교육, 비전문성 교육감 후보자 문제 등으로 현행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다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오피니언코리아

특히 ‘정치편향 교육의 조사·조치’ 여론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과 대통령 국정 긍정평가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특성에서 우세했으며, 특히 서울(61.1%), 남성(61.4%), 학생(65.2%)과 자영업(64.6%), 생산·기술·서비스직(62.6%), 보수층(64.4%)과 중도층(60.7%), 자유한국당(74.9%)과 바른미래당(73.7%) 지지층, 무당층(68.9%), 대통령 국정 부정평가층(76.8%)에서 60~70% 대다수로 나타났다.

반면 ‘학교 정상화 우선’ 여론은 더불어민주당(45.9%) 지지층과 대통령 국정 긍정평가층(41.3%)에서 다소 우세한 응답을 보였다.

이와 맞물려 정치권에서 과도한 선거비용과 정치 편향적인 교육, 비전문성 교육감 후보자 문제로 현행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대해 조사한 결과, ‘찬성’ 43.2%, ‘반대’ 35.8%로, 찬성이 반대보다 7.4%p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잘 모름’은 21.0%였다.

특히 교육감선거 직선제 폐지에 대한 ‘찬성’ 여론은 대전·세종·충청(48.1%)과 대구·경북(45.1%), 인천·경기(44.5%), 부산·울산·경남(42.1%), 60대 이상(47.8%)과 20대(45.7%), 50대(45.5%), 무직·기타(47.8%)와 자영업(45.1%), 가정주부(44.4%), 사무·관리·전문직(42.8%), 보수층 (52.1%), 자유한국당(54.9%)과 바른미래당(53.0%) 지지층, 대통령 국정 부정평가층(57.7%)에서 절반이 넘거나 다소 우세한 양상을 보였다. 정치적 성향이 없는 중도층(44.4%)과 무당층(46.0%)에서도 ‘찬성’ 여론이 많았다.

국민들 대다수가 최근 고교 학생들에게 특정 정치관을 주입한 의혹이 제기된 ‘인헌고 사태’에 대해 알고 있으며,  다수는 ‘정치편향 교육의 조사·조치’ 주장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정치 편향적인 교육, 비전문성 교육감 후보자 문제 등으로 현행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다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오피니언코리아

반면 ‘반대’ 여론은 강원·제주(39.1%), 30대(40.9%), 진보층(38.2%), 더불어민주당(46.2%)과 정의당(44.3%) 지지층, 대통령 국정 긍정평가층(47.5%)에서 다소 많은 응답을 보였다. 광주·전라(찬성 41.7% vs 반대 43.9%)와 서울(40.5% vs 38.2%), 40대(37.8% vs 39.3%), 생산·기술·서비스직(40.3% vs 41.5%)과 학생(34.9% vs 37.2%)에서 찬성과 반대 여론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한편 함께 조사된 文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는 부정평가(49%)가 긍정평가(48%)보다 앞섰으며, 국민 10명 중 9명 이상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에 대해 알고 있고, 공수처 설치에 대한 주장 중 ‘검찰의 정치 권력화 차단’ 의견이 절반 이상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35%, ‘자유한국당’ 27%, ‘정의당’ 8.2%, ‘바른미래당’ 7.2%...‘무당층’ 18% 순이었다.

이번 설문조사는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 3.5%, 19년 10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기준 성, 연령, 권역별 가중치 부여(림가중)된 수치이다.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EA%B5%AD%EB%AF%BC%EB%93%A4-%EB%8B%A4%EC%88%98-%EC%A0%95%EC%B9%98%ED%8E%B8%ED%96%A5-%EA%B5%90%EC%9C%A1%EC%9D%98-%EC%A1%B0%EC%82%AC%EC%99%80-%EC%A1%B0%EC%B9%98-%EC%A3%BC%EC%9E%A5-%EA%B3%B5%EA%B0%90-852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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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20 Nov 2019 17:49:37
<![CDATA["KWMA, 타겟 2030... 선교사 10만명, 평신도 선교사 100만명 파송"]]>  KWMA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세계선교비전센터 2층에서 19-21일 까지 한국선교지도자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20일 오전 10시부터 선교사들의 선교 보고가 있었다. 쿠바 전재덕 선교사는 “쿠바에 94년 6월에 처음 들어갔다”며 “선교학교, GMI 신학교를 운영해 왔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쿠바 평균 GNI는 30불에 불과하다”며 “그럼에도 교육과 의료가 무료”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당 독재로 인해, 전체 국민이 가난하게 살아 간다”며 “그럼에도 하나님은 악의 결과마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쿠바는 매년 3만 명 의대생이 배출되고, 5년 교육 과정이 무료다. 특별히 쿠바는 의학이 발달돼 제 3세계 청년들이 쿠바 의대로 유학 온다. 쿠바에서 의료 면허를 따고, 제 3세계로 돌아간다면 의사 시험이 면제된다. 이를 통해 전 선교사는 “전 세계 청년들이 모여든 쿠바 의대에 복음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그는 “콩고 등 아프리카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해,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기독 의료인으로 활동할 것”이라며 “이처럼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제자로 삼으면, 제 3세계로 제자를 파송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쿠바 의대생이 세계를 향해 복음 선교에 앞장서, 복음의 마지막 주자로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2019 KWMA 한선지포
콩고 의대생들이 춤추고 있다. ©기독일보 이나래 기자
2019 KWMA 한선지포
전재덕 쿠바 선교사©기독일보 이나래 기자

이어 중국 신장 선교사가 발제했다. 그는 “중국에서 성경 암송 사역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성경 암송은 말씀이 삶으로 구체화 되도록 견인 한다”며 “이런 삶을 살아가는 부모를 보고, 자연스레 다음세대에게 신앙이 전수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중국 신학교를 운영 하고 있는데, 신학 보다 말씀 암송을 주로 교육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암송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며 “신명기 6장 6-7절에선 각각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나왔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그는 “히브리어로 ‘하야’가 사용됐는데, 이는 성경 암송의 명령을 보여주고 있다”고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샤난은 한국에선 보통 묵상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실은 암송을 뜻 한다”고 덧붙였다.

그에 의하면, 성경암송의 효과는 ▲능력 ▲영성 ▲정서 ▲신체 ▲사역 ▲관계의 회복이다. 그는 또한 “유럽 권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며 “예로 영국은 한해 220개 교회가 폐쇄되고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보내는 수평선교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며 “말씀으로 제자를 양육하는 수직선교에 집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말씀으로 암송을 통해 제대로 영성을 길러 내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2019 KWMA 한선지포
신장 중국 선교사©기독일보 이나래 기자

이어 필리핀 이영석 선교사가 발제했다. 그는 필리핀의 한국 선교사 협회장을 지내고 있다. 그는 “74년부터 필리핀 선교사역을 시작했다”며 “그러나 필리핀 현장에서 선교 사역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그는 “아시아의 선교 허브 필리핀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때문에 그는 “필리핀 한인 선교로 초점을 돌렸다”고 했다.

특히 그는 그 동안, 필리핀 사역의 문제점으로 ▲물질사역 ▲필리핀 선교에 있어 도시 구심점 선교의 취약 ▲엘리트 계층에 대한 선교 부족 ▲선교사 간 연합의 부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필리핀 한인 선교사 연합체는 88년 이후 조직됐다”며 “2000년대 들어서 정치적 싸움 때문에 와해를 겪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10년 만인 2016년에 재건됐다”며 “현재는 필리핀 선교사 중 98%가 가입했다”고 말했다.

이를 디딤돌 삼아, 그는 엘리트 선교, 도시 선교, 단기 선교의 효율성 연구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오는 단기 선교 팀에게 필리핀을 좋게 기억하도록 유도하고 싶다”고 전했다. 더불어 그는 “물가 싸고, 영어권 등 필리핀의 이점으로 선교사들에게 도피처의 경향이 짙었다”며 “선교사역의 실패 후, 차선으로 택하는 선교 지역에 가까웠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그는 “이런 요점을 선교 자원으로 삼고 싶다”며 “이들을 재교육 시켜, 필리핀을 선교의 거점을 삼도록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2019 KWMA 한선지포
이영석 필리핀 선교사©기독일보 이나래 기자

네 번째로 아랍-페르시아권 신기황 선교사가 발제했다. 그는 현재 에이펜(APEN-Arab Persian Europe Network) 소속 선교사다. 그는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했다”며 “국민의 반이 난민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시리아 난민들은 대거 유럽으로 유입했는데, 이를 놓치지 말고 선교 사역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그는 “APEN이 설립됐다”고 전했다. 이를 놓고, 그는 “유럽권에 머물고 있는 아랍-페르시아권 난민들을 섬기는 사역자 네트워크”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주로 유럽에 피난 온 시리아, 아랍-페르시아권 난민들에게 구제, 전도를 한다. 나아가 난민 사역자를 훈련해, 그 지역에 난민교회를 개척 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주로 난민이 난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 모델이 목표”라며 “그래서 난민들이 자발적으로 난민 및 이주민 교회를 개척해, 선교사를 양육하는 게 비전”이라고 역설했다. 나아가 그는 “전 세계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더불어 그는 한 난민의 고백을 빌려 “우리 처지는 도리어 현지에 돌아가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했다. 하여 그는 “한인 청년사역자를 양성해, 현지에 선교 인턴프로그램을 구축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난민은 우리의 협력자”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오픈도어, 파리제일 장로교회 등과 함께 동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9살인 아프가니스탄 아이는 항상 어른들에게 폭행당했다”며 “그 아이가 복음을 영접하고, 치유 받아 도리어 복음을 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사람들에게 맞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아이”라며 “자신이 겪었던 폭력을 복음으로 치유하고, 어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아이”라고 말했다.

2019 KWMA 한선지포
9살 아프간 어린이가 그린 그림 ©기독일보 이나래 기자
2019 KWMA 한선지포
신기황 선교사©기독일보 이나래 기자

이어 한국 대표 조다윗 비전 선교단 대표가 발제했다. 그는 “2018년도 선교사는 약 2만 3천명인데, 그 중 20대는 450명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선교의 대물림 문제에 봉착했다”며 “한 세대의 마음은 다음세대에게 어떻게든 전수돼야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존 스토트, 빌리 그래함이 주도한 로잔 언약에서, 존 파이퍼는 혜성처럼 등장했다”며 “그는 세계적 복음주의 리더로 성장함과 동시에 일본 선교사를 길러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존 파이퍼는 로잔 언약이란 플랫폼을 통해, 일본 선교사에게 선교정신을 계승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하여 그는 “일본인 선교사는 2016년 까지, 1,400여 명의 아시아 선교사를 배출했다”고 전했다. 나아가 그는 “로잔 언약처럼 선교 사역을 다음세대에게 계승할 플랫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한편, 그는 “문화사역에서 지금은 빅 데이터 선교로 무게추가 옮겨가고 있다”고 전했다. 즉 그는 “빅 데이터를 역이용해 각 사람이 복음을 들었는지를 적극 파악 한다”며 “빅 데이터를 선교 자원으로 사용한 셈”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YWAM 대표 로렌 커닝햄 목사는 YWAM에서 주로 20-30대 리더들을 세웠다”고 전했다. 이처럼 그는 “우리 단체도 현재 20-30대 1,000여명을 길렀다”며 “우리 공동체에 5%만 헌신하고, 나머지는 다른 교회, 선교 단체를 섬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kwma-%ED%83%80%EA%B2%9F-2030-%EC%84%A0%EA%B5%90%EC%82%AC-10%EB%A7%8C%EB%AA%85-%ED%8F%89%EC%8B%A0%EB%8F%84-100%EB%A7%8C%EB%AA%85-%ED%8C%8C%EC%86%A1-852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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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20 Nov 2019 17:47:47
<![CDATA[“지소미아 종료시 한반도 최악 지각변동 우려”]]>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권태진 목사, 이하 한교연)이 "지소미아, 대통령과 정부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15일 발표했다.

한교연은 "만일 정부가 미국의 강력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끝내 지소미아를 종료할 경우 한미 동맹 관계에 심각한 균열과 함께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최악의 지각변동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대통령과 정부의 대승적 결단을, 미국에게는 혈맹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촉구한다"고 했다.

 

특히 "지금은 정부가 굳건한 한미동맹과 한반도 안보 위기 해결을 위해 모든 정책과 결정을 집중해야 한다"며 "일본의 무역 보복문제는 앞으로 정부와 기업, 국민이 혼연일치가 되어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 일본 스스로 잘못을 돌이키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했다. 아래는 성명 전문.

<성명서>
지소미아, 대통령과 정부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미국이 우리 정부에 강력한 제고를 요구하고, 방위비 인상 문제와 연계해 파상적 압박을 가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만일 정부가 미국의 강력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끝내 지소미아를 종료할 경우 한미 동맹 관계에 심각한 균열과 함께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최악의 지각변동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과 정부의 대승적 결단을, 미국에게는 혈맹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촉구한다.

미국이 '지소미아' 문제를 이토록 중대하고 심각하게 여기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지소미아가 종료될 경우 지금까지 유지돼 온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가 붕괴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결국 이것이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이롭게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무역 보복조치로 연계해 발생한 문제이므로 일본의 무역 규제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의 자세가 조금도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미국마저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일본에 중재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모든 공은 우리 정부의 결단에 달렸다. 만일 정부가 일본에 대한 압박 실효성이 거의 없는 지소미아 종료를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그 모든 결과는 온전히 우리 정부와 국민이 짊어져야 무거운 짐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미국이 천문학적인 방위비 인상이라는 카드로 압박하고 있는 것도 이것이 지소미아 파기를 막을 최후의 압력 수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부가 굳건한 한미동맹과 한반도 안보 위기 해결을 위해 모든 정책과 결정을 집중해야 한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여야가 힘을 합해 지소미아 종료로 파생될 더 큰 위기상황에 대해 보다 냉철한 인식을 공유하기를 바라며, 대통령과 정부가 대한민국의 현실과 미래를 위해 바른 정책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미국의 우려를 충분히 불식시켜 주는 선행적 조치를 취할 경우, 방위비 인상문제도 보다 유연한 위치에서 국민이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협상이 타결될 수 있을 것이며, 향후 한미동맹관계가 보다 돈독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본의 무역 보복문제는 앞으로 정부와 기업, 국민이 혼연일치가 되어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 일본 스스로 잘못을 돌이키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무역 보복문제를 미국까지 연계된 안보협정 파기로 맞대응할 경우 한미 간의 동맹관계 균열과 상호 신뢰관계 손상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한미 두 나라의 신뢰관계가 깨지게 되면 한반도의 안보 위기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 있으며, 오히려 안보 대척점에 있고, 6.25 한국전쟁을 일으킨 북한, 중국, 러시아를 도와주는 꼴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소미아 문제를 오직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바르게 결정해 줄 것을 대통령과 정부, 국회에 요청하며,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여 후대에까지 반드시 평화가 지켜지도록 힘의 균형 차원에서 대승적 결단을 내리기를 촉구한다. 이로써 한미일 3국이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든든한 안보협력관계로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히 하고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정부가 되기를 희망한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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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Nov 2019 18:19:27
<![CDATA["북한 주민을 강제 송환한 것은 명백한 인권 유린 아닌가?"]]>

한국은 인권 미개국으로 낙인 찍혀도 좋은가?
북한 주민을 강제 송환한 것은 명백한 인권 유린 아닌가?

 

지난 2일 동해상에서 나포한 북한 어선에 타고 있던 주민 2명을 우리 정부는 7일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정부가 이들을 강제로 북한에 돌려보낸 것은 그들이 선상에서 살인을 했다는 것인데,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지(死地)로 돌려보낸 것은 여러 가지로 우리나라를 인권 후진국 내지, 미개국으로 비난받을 상황이 되었다.

우선은 이들 2명이 좁은 선상에서 16명을 살해했다는 것도 믿겨지지 않는다. 이들은 20대 초반으로 알려지는데, 북한에서 20대 초반이면 인민군 군 복무를 할 시기이다(북한은 중학교를 졸업한 18세부터 10년간 군 복무를 함) 그런데 군에 가지 않고 어선을 탄 것은 신체적 장애를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건장한 어부들 16명을 살해할 수 있겠는가?

또 설령 그들이 살인을 했다 하여도, 철저한 조사를 받고, 국내법에 의하여 재판을 받아야 한다(그들은 북한 지역에 살고 있어도, 우리 헌법에 의하여 자국민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강제로 북송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통하지 않는 궁색함만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지난 1995년 발효한 “고문방지협약”에 의하면, ‘고문 받을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다른 나라로 개인을 추방/송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유엔인권조사회(COI)의 2014년 보고에 의하면, 북한은 강제 북송된 탈북자는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악랄한 고문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유엔 인권 최고 대표 사무소(OHCHR)의 ‘강제 북송 결정이 자유민주주의 인권 국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국제법 정면 위반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인권단체인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도 ‘범죄 행위가 확인되기도 전에 범죄자로 낙인찍어 북송한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부인한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대한변호사협회도 ‘반인권적 북한 주민 강제 북송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논평을 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에서도 ‘정부의 북송조치는 고문방지협약 위반’이라고 성명을 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017년 북한에 강제로 억류되었다가 송환된 직후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윔비어 부모가 문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인권 변호사’라는 명예가 무색하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현 정부는 그 동안 납북 피해자 가족과의 면담이나, 북한인권 행사에 참여하는 인권활동가들에 대한 지원 거부와 북한인권재단 출범도 소극적으로 하여 3년이나 지난 현재도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한국은 아시아에서 모범적인 인권 국가였다. 그런데 동성애, 성인지 교육과 지원, 젠더 옹호 등, 사회 윤리와 도덕을 허무는 것에는 엄청난 관심과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유독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소홀하거나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어 대단히 안타깝다.

우리나라는 지금 국제사회로부터 인권 미개국 내지, 후진국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내년부터 3년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을 맡을 상황인데, 오히려 인권 유린과 인권 무시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을까 걱정이다.

북한 눈치 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북한 주민들의 기본적인 인권 보호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외면하면 반쪽짜리, 혹은 절름발이 인권 국가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북한 인권에 대한 온전한 인권 정책을 펼쳐 나가기 바란다.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EB%B6%81%ED%95%9C-%EC%A3%BC%EB%AF%BC%EC%9D%84-%EA%B0%95%EC%A0%9C-%EC%86%A1%ED%99%98%ED%95%9C-%EA%B2%83%EC%9D%80-%EB%AA%85%EB%B0%B1%ED%95%9C-%EC%9D%B8%EA%B6%8C-%EC%9C%A0%EB%A6%B0-%EC%95%84%EB%8B%8C%EA%B0%80-852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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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Nov 2019 18:18:22
<![CDATA[박지혜 아나운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굿네이버스 서울본부(본부장 문상록)가 14일 박지혜 아나운서로부터 저소득가정 아동 장학금 지원을 위한 후원금 603만 2,920원을 전달받았다. 이번 전달식은 굿네이버스 서울본부에서 진행됐으며 문상록 굿네이버스 서울본부장, 박지혜 아나운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박지혜 아나운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서 팔로워들과 함께 크라우드펀딩 '1일 1러닝 기부런' 이벤트를 기획하고 10월 14일부터 27일까지 약 2주간 진행했다. 참여자들은 1km 당 1,000원 ~ 10,000원 금액을 약정한 뒤 실제 러닝 한 거리만큼 기부에 참여했고 약 2주 동안 112명이 참여하여 총 771만 2,920원이 모금되었으며, 그 중 603만 2,920원을 굿네이버스 서울본부에 전달했다. 굿네이버스 서울본부가 전달받은 후원금은 서울지역 내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저소득가정 아동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될 계획이다.

문상록 굿네이버스 서울본부장은 "지역사회 내 소외된 아동을 위해 나눔에 앞장서 준 박지혜 아나운서에게 감사드린다”며,“전달받은 후원금은 아이들이 어려움 없이 학교생활을 해나가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소중하게 전달하겠다”고 전했다.

박지혜 아나운서는 "제가 평소에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을 넘어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1일 1러닝 기부런'을 진행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해주셨고, 우리가 직접 뛰어서 만든 기부금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걱정 없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박지혜 아나운서는 2015년 이데일리TV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하나은행, SK하이닉스 등에서 아나운서로 일했으며, 18년 5월부터는‘운동하는 아나운서’라는 컨셉으로 프리랜서 및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이다.

한편, 굿네이버스 서울본부는 서울지역 내 3개 나눔인성교육센터, 9개 지부와 협업하여 지역의 욕구에 맞는 사업방향을 가지고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아동친화적인 지역을 만들기 위해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캠페인 및 지역사회조직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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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15 Nov 2019 18:17:41
<![CDATA[“북한 선원 2인 강제북송, 국회 차원 진상조사해야”]]>
17개 북한 인권 단체들이 최근 정부의 북한 청년 2인에 대한 ‘강제북송’을 강력히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강제북송된 배를 타고 남하한 북한 청년 2인에 대해 “16명을 살인했기 때문에 추방했다”고 발표했으나, 최근 북한 소식통과 탈북민들 사이에서는 이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청년 2인이 김연철 통일부 장관 발표대로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힌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주장도 제기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들 2인이 자필로 귀순의향서를 작성하고, 판문점 육로 강제북송 당시 재갈을 물고 안대로 눈을 가린 채 넘겨졌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직접 증거가 될 수 있는 해당 어선도 북한으로 보냈고, 해당 사건의 공개 과정도 투명하지 못했던 터라, 의혹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다.

북한 인권 단체들은 “대한민국 정부는 상황을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조사도 제대로 하기 불충분한 불과 6일만에 성급하게 벌였다”며 “(북한 선원 2인에게) 일차적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적법절차의 틀 안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형사책임 문제를 규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살해혐의를 입증할 뚜렷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정부 합동조사 과정에서의 진술과 정황, 그리고 밝힐 수 없는 정보가 살해를 혐의를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해명했다”며 “그러나 비사법기관인 정보기관이 주도하고 통제한 조사에서 이루어진 진술이나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고, 강제송환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도 될 수 없다. 정부가 언급한 정황도 자의적으로 또는 과잉 추정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대한민국 정부의 처사는 문명국의 기본 양식과 보편적 인권 기준을 저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게 한다”며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여론을 호도하려고 했다는 점”이라고 규탄했다.

이에 △강제송환된 이들의 현 상황과 계획을 공개할 것을 북한에 요구한다 △유엔 및 유엔 회원국들의 우려 표명을 요청한다 △대한민국 국회의 진상조사를 촉구한다 등을 내세웠다.

이번 공동성명에 참여한 인권 단체는 북한인권시민연합과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북한정의연대,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등 17곳이다. 다음은 성명 전문.

우리는 고문위험 국가로의 추방·송환·인도를 금지한
유엔고문방지협약 제3조 등 국제법과 국내법을 위반하고
북한 선원 2명을 성급하게 ‘추방’한 대한민국 정부를 규탄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규탄할 초유의 일을 벌였다. 2019년 11월 7일, 통일부는 11월 2일 동해상에서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선원 2명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고 뒤늦게 밝혔다.

논란이 되자 통일부는 정부합동조사에서 20대 남성인 이들이 동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오징어잡이 배에서 동료 승선원 16명을 살해하고 도주한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을 추방 이유로 밝혔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상황을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조사도 제대로 하기 불충분한 불과 6일만에 성급하게 벌였다.

정부는 정부가 주장한 살해혐의를 입증하는 뚜렷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정부합동조사 과정에서의 진술과 정황, 그리고 밝힐 수 없는 정보가 살해를 혐의를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비사법기관인 정보기관이 주도하고 통제한 조사에서 이루어진 진술이나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고, 강제송환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도 될 수 없다. 정부가 언급한 정황도 자의적으로 또는 과잉 추정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영토에 도착한 북한 주민에게는 일차적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적법절차의 틀 안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형사책임 문제를 규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1995년 가입한 유엔고문방지협약 제3조는 고문위험 국가로의 추방·송환·인도를 금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한민국은 1990년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 규약)에 따라 생명권, 고문받지 않을 권리, 신체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9조를 근거로 강제송환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이 조항은 탈북자를 “보호대상자로 결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만 할 뿐, 어디에도 추방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하물며 북한보다도 인권상황이 더 나은 외국에서 온 이주민이나 난민이 본국에서 살인 혐의를 받고 있어도 불과 3-4일만 조사한 후, 사법 심사를 포함한 적법절차 없이 임의로 송환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정부의 처사는 문명국의 기본 양식과 보편적 인권 기준을 저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게 한다.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여론을 호도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진술과 정황만으로 국민의 안전을 염려했다면, 법적으로 허용된 충분한 조사기간을 활용해 더 충실히 조사하거나 국내법과 적법절차에 따른 수사와 재판으로 투명하고 합법적으로 처리했어야 할 일인데, 무책임하게 ‘추방’해버림으로써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사법관할권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남북한 사이에는 범죄혐의자 인도에 관한 협정이나 합법적인 근거와 절차가 없으므로 강제송환은 불법이다. 이러한 행위로 인해, 불법적인 강제송환을 주도했거나 관여한 대한민국 정부기관 책임자들과 관계자들도 북한인권문제에 관한 책임추궁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게 됐다.

또한 이들을 북한으로 ‘추방’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이므로 북한 당국이 두 사람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추적하고 확인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이 됐다. 성급한 강제송환으로 인한 여러 문제의 책임이 대한민국 정부에 있으므로, 이후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북한당국에 공개적으로 요구해야 할 책임도 대한민국 정부에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와 이 일에 관여한 사람들의 책임을 공개적으로 묻는다.

북한 당국은 송환된 두 사람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공개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대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밝혀야 하고,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고문이나 비인간적 처우를 하지 말아야 하며, 사형 등 극단적인 처벌을 하지 않아야 한다. 북한이 가입한 국제인권법 상의 의무와 인권상황에 관한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를 엄중히 상기하기 바란다.

또한 국제사회에는 유엔과 유엔회원국들의 우려 표명을 요청하고, 대한민국 국회에는 진상조사를 촉구한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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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3 Nov 2019 19:03:51
<![CDATA[”멜론 차트 100위권에 진입할 CCM을 만들고 싶다"]]> 어느 날 예배 중, 이 가사에 얹힌 묵직한 건반 멜로디가 가슴에 꽂혔다. 음악 검색 어플을 돌려보니 ‘WELOVE-주의 나라’로 검색됐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생각할 거리를 줬던 노래의 주인공들을 만나고 싶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던 13일, 위 러브(WELOVE)의 박은총 대표(장신대 기독교음악학과 재학)를 만났다. 인터뷰는 장신대 근처에 위치한 WELOVE 카페에서 진행했다.
 

박 대표는 “우린 단순히 CCM 밴드가 아닌 Creative Team"이라며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방식으로 그리스도 아름다움을 일반 대중들에게도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재 위 러브는 혼성 멤버 18명이 활동 하고 있다. 각기 베이스, 기타, 보컬을 맡으며 다채로운 화음을 발하고 있는 위러브(WELOVE). 그는 ”멜론 차트 100위권에 진입할 CCM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목표“라며, WELOVE의 '당찬 꿈’을 들어봤다.

Q : 위 러브(WELOVE)의 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 우리는 워 십팀(Worship Team)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팀(Creative Team)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창작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미죠. 이 시대는 영상시대고 영상을 통해 소통하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곡을 쓰더라도 영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카페 운영, 더 나아가 예배 컨퍼런스 등 다양한 요소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독교에서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들을 뽑아내, 기독교 문화로 재가공함으로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내 친구들 넓게는 내 세대들을 보더라도 기독교 콘텐츠가 빈약했거든요. 나도 10년 전만 해도 외국의 워십 영상을 통해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현재 한국에는 젊은 세대에 눈높이를 맞춘 콘텐츠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위 러브는 이런 콘텐츠를 만들어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위러브(WELOVE) 팀 리더 박은총 대표 인터뷰
위러브(WELOVE) 팀 리더 박은총 대표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Q : 박은총 대표님과 나머지 팀원들의 살아왔던 인생 여정이 어떻게 지금의 위 러브의 음악을 만들어냈는지 궁금합니다.

A : 강현이(WELOVE 워십 리더)랑 나랑 지금까지 위 러브의 곡을 써왔어요. 전까지는 곡을 써본 적이 없었어요. 그니까 위 러브를 시작하면서 곡을 쓰게 된 케이스죠. 위 러브는 무엇보다 멜로디보다 가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강현이랑 나랑 추구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서로 소통하면서 가사를 쓰고 있지요.

나 같은 경우 가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이 세대와 소통하면서 쓰고 싶어요. 즉 지금 세대와 소통할 수 있을지를 항상 질문 하면서 곡과 가사를 쓰고 있죠. 가령 ‘~하소서’란 표현 자체는 우리 곡에선 1번 밖에 없어요. 왜냐면 교회에서만 배워서 쓰는 소위 고어(古語)식 표현이라서 그렇죠. 예수님 믿지 않는 우리 세대가 보면 고어에요. 그래서 믿지 않는 10, 20대들이 평소에 쓰는 표현이 뭘까 고민하면서 가사를 써요.

강현이 같은 경우.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표현이 진짜 많이 나와요. 가사 중 ‘꿈 없는 우리에게’, ‘우리를 통해 이뤄지리’ 등 ‘우리’를 항상 강조하죠. 강현이와 나와 동감한 부분은 이 시대 교회가 공동체성을 많이 상실했다는 것이에요. 공동체성을 고백하고 싶고, 무엇보다 우리세대에 맞게 공동체를 고백하고 싶어요. 우리 곡 중 ‘사랑 중에 사랑’이 있어요. 이거 3일 밤을 새가면서 썼거든요. 청소년 집회를 위해서 준비했던 곡이에요. 청소년들이 위로를 넘어서 회복까지 갈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쓴 곡입니다.

진정성도 또한 위 러브(WELOVE)만의 포인트에요. 우리 팀은 예배에서 멘트든 기도든 예배인도든 말 자체에서 최대한 가면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우리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죠. 그러면서 청소년 아이들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Q : 카페 운영도 공동체성을 추구하고 싶은 것과 연관 있는 건가요?

A : 네 그렇습니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 중 렉서스(Lexus)가 있어요. 여기 매장 같은 경우는 카페도 있고 식당도 있어요. 이런 철학을 공유해서 우리 공간에 오면 위 러브를 경험하게 하고 싶어요. 위 러브와 직접 소통도 하고요. 카페란 공간 자체가 그런 면에서 좋은 매개체죠. 온라인에서만 보았던 위 러브를 오프라인에서 직접 보고 허심탄회하고 자기 속 얘기 털어놓고 소통하는 공간. 이를 위해 장신대 근처에 카페를 열었습니다.

Q : 아이들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용납과 연관 있는 건가요?

A : 그렇습니다. 팀원들끼리도 서로 오픈하는 것에 있어, 서로 숨기지 않고 가식 떨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자유롭게 하자 이거죠. 교회 설교 시간에는 회중들은 보통 펜으로 기록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세대는 영상세대에요. 주로 핸드폰을 쓰고 있죠. 매체가 영상으로 바뀌었는데 이를 예배 요소로 적극 활용하자는 겁니다.

예로 우리 예배 컨퍼런스에 온 아이들(청중)에게 “핸드폰 적극 써도 돼.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찬양해”를 많이 강조하는 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을 추구해요. 타인의 시선 신경 쓰지 말고. 보통 예배는 강대상을 중심으로 청중과 목사 간에 일방적인 시선이잖아요? 그러나 우리 예배는 다 같이 어우러져 함께하는 분위기를 추구해요. 그래서 우리가 중앙에 서고 청중과 우리와 하나로 어우러지는 형태로 워십 공연을 드리죠.

 

 

위러브(WELOVE) 팀 리더 박은총 대표 인터뷰
©위러브(WELOVE) 제공

Q : 다른 기독교 신문에서 위 러브(WELOVE)의 소개 글을 보니까, “우리는 단순히 CCM 밴드가 아닌, 기독교문화를 표방하는 예배 팀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씀하신 걸 보았습니다. 위 러브(WELOVE)가 추구하고 싶은 기독교 문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주변에서 우리를 CCM 밴드로 보지만. 실은 영상이 메인이에요. 그 외에 옷도 제작 하고요. 보통 일반사람들은 CCM 장르를 많이 안 듣잖아요. 그러다 보니 세상과 소통하는 CCM 장르를 추구하고 싶어 진거죠. 세상에서 우리가 배울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나왔잖아요? 물론 세속적인 부분도 경계해야겠지만, 어쨌든 교회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우리 기독교 문화도 세상을 향해 아름다움을 충분히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를 적극 느끼도록 하고 싶어요. 특히 예수의 아름다움 말이에요. 이런 소통을 위해 세상의 매체를 적극 차용하고 싶은데, 이게 바로 영상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일반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교회 문이 높거든요. 우린 그 울타리를 허물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는 교회보다 체육관, 라이브 클럽을 빌려 공연해요. 이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우리 마음이죠.

교회란 공간이 세상에서 너무 안 좋게 비춰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왜 그럴까 고민해 봤는데. 교회는 교회만의 일방적 언어를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10대·20대 아이들에게 말이죠. 그래서 아이들이 있는 곳, 세상과 소통이 가능한 곳에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가서고 싶었어요. 옷도, 스티커 등도 만들고요. 그처럼 교회만의 언어에서 벗어나 세상과 어우러져 충분히 멋있고 아름답고, 감각적인 기독교의 진리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잖아요?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탄생됐는데, 왜 우리 크리스천들은 더 아름답고 창조적이지 못할까란 고민이 있었어요. 그래서 세상적인 문화를 이용해 기독교만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그 안에 복음적 메시지를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거죠.

 

위러브(WELOVE) 팀 리더 박은총 대표 인터뷰
위러브(WELOVE)카페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일하는 팀 멤버들.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Q : 위 러브의 ‘주의 나라’를 처음 들었는데, 멜로디라인이 감각적이면서 가사내용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느꼈습니다. 세상의 고된 벽 앞에서 힘들어하는 20대말·30대 초반의 크리스천 직장인들을 위로하는 느낌이랄까? ‘고된 하루를 보내고’, ‘공감 하시네’ 등도 그렇고요. 음악을 통해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주는 게 목표인가요?

A : 멜로디가 좋다고 하시니 감사하네요. 그러나 우린 가사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멜로디가 좋다는 얘기도 가사가 공감되기 때문에 반응이 좋다고 생각해요. 보통 찬양들을 들어보면 아쉬운 점이 있는데, 바로 윗세대의 고백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점이에요.

그러다 보니 가사들이 우리 세대와 공감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위 러브(WELOVE)는 우리세대가 절실히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가사를 써요. 특히 지금 10대, 20대 아이들이 제일 필요로 하는 부분이 무얼까 생각하면서 가사를 쓰고 있죠.

특히 어른세대들이 가르쳤던 부분 중 ‘너희도 희생해라’는 것이 지금 세대에겐 별로 와 닿지 않다고 생각해요. 헌신은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강요해서 되는 건 아니거든요. 이런 강요하는 목회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괴리감 속에서 지금 우리 세대가 느끼는 부분을 고스란히 담아내려 노력한 것 같아요.

교회 제도권 안에 있으면 어른들의 눈치 봐야 하잖아요. 언제는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에게 ‘주의 나라’ 가사를 보여드렸어요. 그런데 목사님은 가사 내용 중 ‘불합리한 현실’이 마음이 걸린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 세대는 현실이 충분히 불합리하다고 여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어른들과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Q : 현실 속 어떤 부분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시는지?

A : 강현이(위러브 워십리더)가 파리바게트에서 알바를 많이 했어요. 세상 가운데 있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희생을 강요당하는 부분이 많았죠. 세상은 보이는데서 열심히 하고, 안 보이는데서 쉬엄쉬엄 하고 그러는데. 그리스도인은 매번 열심히 하고 이런 지침가운데서도 ‘주의 사랑을 깊이 받은 내가 먼저 섬겨 야겠다’는 그의 스토리가 있었어요. 이를 담은 게 바로 ‘주의 나라’였던 거죠.

Q : ‘주 나와 함께 하시니’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기타 리프가 황홀한 느낌을 자아냈어요. 그러면서 그 위에 타고 올라 질주하는 청춘의 느낌이 들었거든요. 기존 CCM의 노선을 유지하면서, 이로부터 탈주해 대중음악의 어느 한 지점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고민이 묻어나온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 저희 꿈은 우리 워십 음악이 멜론 차트 100위권에 올라가는 것이에요. 기독교 음악이 줄 수 있는 힘이 충분히 있어요. 특히 예수님을 담아 전파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도 시도하고 있고, 앞으로도 시도 중입니다. 일반 가수들과 피처링도 준비 중이고요. 이를 통해 세상과 좀 더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러브(WELOVE) 팀 리더 박은총 대표 인터뷰
©위러브(WELOVE) 제공

Q : 다른 기독교 매체 소개 글(크리스천 투데이 2019. 7. 3일자 기사)을 보니, 한국의 힐송(HillSong) 같은 CCM을 추구하고 싶다는 내용을 보았어요. 힐송의 어떤 부분에 영향을 받았는지?

A : 저는 매년마다 힐송(HillSong) 컨퍼런스 가고 있어요. 보통 힐송을 생각하면 음악만 생각해요. 그러나 힐송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밖에 안 돼요. 힐송은 하나의 교회에요. 그들은 소외되는 사람들을 섬기는 엄청난 교회죠.

문화적으로서 접근하는 것. 보통 사람들이 힐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있어요. 바로 힐송은 멜로디가 좋다는 것? 이들은 1년에 수천 개의 곡을 쏟아내는데 그 중 1-2개만 뽑아내서 팬들에게 소개하거든요. 엄청난 검증을 거치는 거죠. 그리고 음악을 선보였을 때 아이튠즈 차트 1위에 오르고 그래요. 힐송은 그런 점에서 세상에서도 나무랄 게 없는 요소를 갖추고 있죠. 이처럼 세상 문화와 소통 가능한 부분을 힐송에게서 배우고 싶어요.

Q : 그런데 너무 멜로디에 치중하면, 가사를 통해 청중들에게 전달되는 복음의 메시지가 희석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얼마 전 힐송 멤버 중 마티 샘슨(Marty Sampson)이 신앙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고백을 한 적도 있었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 우선 위 러브(WELOVE)는 멜로디보다 가사를 중시합니다. 저희들이 쓴 가사 중 신학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이해한 부분은 적극 장신대 교수님들에게 물어봐요. 그리고 위 러브 멤버 중 다양한 신학교 출신들이 포진해 있어요. 가령 침신대, 합신대 학생들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마티 샘슨(Marty Sampson)을 꾀나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예배 컨퍼런스 공연 때, 그를 보면 항상 질문을 던지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구도자의 모습을 많이 보여줬던 것 같아요. 막상 그 일(지난 8월, 마티 샘슨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자신의 신앙적 회의를 고백한)이 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죠. 하지만 신앙의 여정 중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그를 위해, 그리고 신앙적 의심에 빠진 모든 이들을 위해 적극 기도하는 것뿐이죠.

혹시 주 품에(Still) 작곡한 힐송 멤버 르우벤 모건(Reuben Morgan) 아세요? 그는 형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교회를 떠났어요. 그러나 10년 만에 다시 교회로 돌아왔죠. 최근 힐송이 발매한 피플(People) 앨범 중 르우벤 모건이 작사한 노래가 있어요. 거기에는 ‘당신이 나를 찾으셨다’는 가사 내용이 나와요. 들으면 들을수록 슬프죠. 그러나 분명 르우벤 모건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 에요. 설사 그가 교회를 다시 떠나도 하나님은 그를 직접 찾아가실 것이란 믿음이 있어요.

 

위러브(WELOVE) 팀 리더 박은총 대표 인터뷰
위러브(WELOVE) 팀 리더 박은총 대표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Q : 유투브 영상 댓글 중 “위 러브(WELOVE) 찬양을 들으니깐 맨날 듣던 가요가 듣기 싫고 찬양만 듣고 싶어 졌어용”이라는 한 청소년의 댓글이 달린 걸 보았습니다. 실제로 유튜브 공연 영상 보니까 공연에 크리스천 청소년 특히 10대, 20대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위 러브만의 매력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A : 솔직함과 진정성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했겠죠. 그러나 바로 솔직함과 진정성이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소통하는 방식과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는데. 우리가 소통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진정성인 것 같아요. 진솔함, 솔직함이죠. 유튜브가 인기를 얻은 요인도 바로 진짜 리얼리티를 보여주니까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 청년들에게서 인기를 얻은 거죠. 우리도 찬양 인도 할 땐 정형화된 말 안 해요. 보통 찬양 집회가면 “다 같이 주께 기도하며 나아 갑시다” 이러잖아요? 근데 우리는 청중들에게 “애들아? 왔어? 준비됐어?”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해요. 또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에게서 자유함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도록 노력하죠. 틀리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죠.

다른 CCM밴드들의 영상들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틀린 모습 그대로. 현장 사운드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해요. 이것이 위 러브(WeLove)의 진정성이고 매력 포인트라 생각해요.

Q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은?

A : 어른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다음세대는 죽지 않았다고 외치고 싶어요. 어른들의 옷을 다음세대에게 입히고 싶은데, 안 입혀지니까 죽었다고 말하지만 실은 아니거든요. 우리 아이들은 자기들의 방식대로 기독교 문화를 이어가고 소통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어른들도 예수님처럼 좀 더 넓은 마음과 아량으로 품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예수님의 용납과 포용. 너그러운 마음으로 위 러브(WELOVE) 그리고 다음세대 위해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EC%9D%B8%ED%84%B0%EB%B7%B0-creative-worship-852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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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3 Nov 2019 19:03:07
<![CDATA[그리스도인 삶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때로는 지금의 삶과 좀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마음만 가질 뿐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어’라고 하면서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합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리차드 버크가 쓴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갈매기의 꿈’에는 주인공 갈매기인 조나단을 비롯한 많은 갈매기들이 등장합니다. 다른 갈매기들은 먹는 것과 먹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것에 열중을 합니다. 하지만 조나단은 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조나단의 그런 행동은 다른 갈매기들에겐 아무런 가치 없는 그저 헛된 일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갈매기들은 조나단을 보고 비난을 했습니다. 하지만 조나단은 다른 갈매기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직 나는 일이 전부인 양 푸르른 창공을 향해 힘찬 날개 짓을 해댔습니다.

조나단은 하늘을 나는 것이 좋았습니다. 높이 날아오를수록 희열을 느꼈습니다.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한 참을 날고 나면 온 몸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났습니다.

날이 갈수록 조나단은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다른 갈매기들은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조나단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조나단은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가장 높이 나는 최고의 갈매기가 됩니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생각에서 만들어진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 되는 삶은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조나단을 비웃었던 갈매기들은 결국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사는 조나단을 보고 자신들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과 다른 길을 걸으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때론 조롱을 받기도 하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그들이 지향하는 일이 일반적인 일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보편적인 생각이 자신을 옭아매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새로운 생각에서 만들어집니다. 또한 어떻게 보면 무모해 보일 때도 있지만 단순하고 묵묵한 것이야말로 최고 되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방법입니다.

역설(逆說, paradox)

오늘 말씀의 제목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로마 제국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천천히 서둘러라”는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분명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모순적인 말입니다. 천천히 하다 보면 서두를 수 없고, 서두르다 보면 천천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끼리 합쳐놓은 말이 됩니다.

이것을 ‘역설(逆說, paradox)’이라 부릅니다. 세상을 가만히 보면, 이 역설 속에 엄청난 보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 사랑과 미움, 기회와 위기, 이런 단어들은 모두 역설적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들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반대가 아니라 존재의 다른 양태일 뿐입니다. 성공과 실패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패했고 실패한 것 같아 보이지만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모든 상황에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고 기회가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천천히’와 ‘서두르다’는 겉으로 볼 때 상충되는 개념이지만, 이 말의 의미는 서두르지만 전후 좌우를 따져보면서 천천히 목표를 정하고 서두르라는 말입니다.

곧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은 서두르되 내가 무엇을 위해 서두르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라는 말입니다.

일본 격언 중에 ‘이소가바 마와레(急がば回れ)’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흔하게 사용되는 말이라고 하는데, 이 뜻은 “급하게 서두르면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을 대표하는 말이 ‘빨리 빨리’ 아닙니까? 빨리 빨리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빨리 서두르다 보면 오히려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둘러도, 천천히 서둘러야 하는 것입니다.

급할수록 정신차려야 한다

몹시 목이 마른 비둘기가 옥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탈진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기 건너편 건물에서 무언가 반짝거렸습니다. 그것은 시냇물처럼 맑아 보였습니다.

비둘기는 “물이다!” 하고 소리치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날아가 시냇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는 날개가 꺾인 처참한 모습으로 길거리에 떨어졌습니다. 비둘기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렸습니다. “아아… 분명히 물이었는데.”

그런데 비둘기가 부딪힌 것은 시원한 시냇물이 아니라 시냇물이 그려진 광고탑이었습니다.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었던 비둘기는 시냇물이 그려진 광고탑을 진짜 시냇물인줄 생각한 것입니다.

위급한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되면 눈 앞에 보이는 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급할수록 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서둘러도, 천천히 서둘러야 합니다.

상 받기 위해 달음질해야 한다

고린도 시에서는 2년마다 이스미안이란 운동경기가 열렸습니다. 로마 제국의 가장 큰 체육 제전은 아테네에서 열린 올림픽 경기였고 그 다음 규모가 이스미안 경기였습니다. 이스미안 경기가 열릴 때가 되면 고린도에는 경기 10개월 전부터 선수들이 몰려들어 훈련의 열기로 가득찼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을 때 이스미안 경기 가운데 육상선수가 달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에 빗대어 고린도 교회 성도에게 본문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를 통해 육상선수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셨을 것입니다. 선수들은 출발 신호탄이 울리면, 정말 사력을 다해 달립니다.

특히 100m 달리기는 더욱 그렇습니다. 실제 올림픽에서 혼신을 다해 달리는 선수가 허벅지 근육이 파열돼 주저앉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이 피나는 훈련을 하고 사력을 다해 달리는 이유는 우승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이들은 있는 힘을 다해 달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상 받기 위해 달음질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방향을 잡고 달려야 한다

바울은 무조건 달음질만 하면 상을 받는 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고전 9:26)’.

바울은 먼저 달리기 전에, 가장 먼저 분명한 방향을 보고 달려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방향 없이 달리면,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상을 탈 수 없습니다. 실격 처리 되는 것입니다.

‘가젤과 사자 이야기’라는 글이 있습니다. 가젤은 영양의 일종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가젤이 잠에서 깬다. 가젤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가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온힘을 다해 달린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잠에서 깬다. 사자는 가젤을 앞지르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온힘을 다해 달린다. 네가 사자이든, 가젤이든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

사자도 가젤도,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사람들 가운데 사자의 입장에, 가젤의 입장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입장에 있든,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른다고 달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가젤이 사자를 못 따라오도록,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낭떠러지나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낭떠러지나 막다른 골목으로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결국 뛰 따라오는 사자에게 잡히는 것입니다.

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달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젤을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아무런 목표물도 없이 무조건 빠르게 달린다 해서 먹잇감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야구를 할 때 타자가 투수의 공을 아무리 장외로 멀리 날려 보냈을지라도, 파울은 홈런이 아닙니다. 파울은 파울일 뿐입니다. 정확하게 정해진 팬스를 향하여 넘길 때, 그 공은 홈런이 되는 것입니다.

방향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합니까? 이 질문은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시는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바울은 우리의 달려가야 할 푯대, 우리의 살아야 할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두르기 전에, 먼저 내가 달려가는 목적이 무엇인 천천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천천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빨리 방향부터 수정해야 합니다. 그대로 달려가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어쩌면 달려간 만큼 다시 돌아와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가서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다 해도,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비록 이 땅 가운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송받을 수 있어도,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라

목적이 분명히 섰다면, 우리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목적과 목표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목적은 목표보다 위에 있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목적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고, 그 본질을 추구하기 위한 과정과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목적이 정해졌으면 무엇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단기적 목표와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목표를 세우는 것과 세우지 않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목표가 있는 사람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안에 있을 때, 기쁨과 평안을 누립니다. 또한 목표를 향해 열정을 가지고 달려갈 때 기쁨과 평안이 넘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절제해야 한다

천천히 목적과 목표를 정하였으면 이제 서둘러야 하는데 서둘러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있음을 바울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절제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고전 9:25)’. 서둘러야 하지만, 무조건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절제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하는 운동선수는 절제합니다. 먹는 것도 절제하고, 하고 싶은 것도 절제하고 시간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시험이나 수능 시험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TV 보는 것, 스마트폰도 절제하고 노는 것도 삼가고, 오직 공부에만 집중합니다. 우리 삶이 무절제하다면 근본 이유 중 하나는 목표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분명히 있고,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절제하게 됩니다. 정말 살을 빼야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먹는 것을 절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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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은 바로 이 절제력에서 나옵니다. 못이 단단한 나무를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힘은 집중력에서 나옵니다. 쓸데없는 곳에 힘을 주는 것을 절제하고 한 곳에 집중할 때 그 힘이 구멍을 냅니다. 절제는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 낭비하는 것을 자제하고 한 곳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마시멜로 이야기

1960-1970년대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자 월터 미셸 박사는 아이들의 욕망과 자제심에 관한 실험을 했습니다.

미셸 박사는 취학 전에 있는 아이들을 초대해 큰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방에는 작은 책상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책상에는 마시멜로 두 개와 종 하나가 있었습니다. 마시멜로는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입니다.

미셸 박사는 방에 있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바빠서 잠깐 나가봐야겠구나. 그런데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여기 있는 마시멜로 두 개를 다 줄 테니까, 기다리기를 바란다.

혹시 그 전에 마시멜로가 먹고 싶으면, 종을 울리고 하나만 먹으렴. 하지만 하나를 먹으면 그걸로 끝이야. 두 개를 다 먹으려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이렇게 말하고는 미셸 박사는 그 방을 나갔습니다. 방문은 굳게 닫혔고, 어린이들만 방안에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방 안에 있는 아이들 가운데 어떤 아이는 불과 1분 만에 종을 울리고 마시멜로 하나를 먹어치워 버렸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눈을 가리고 노래를 부르고 책상을 차기도 하며 딴청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꾀가 많은 아이는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실험 결과 미셸 박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1/3의 아이들은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었고, 나머지 2/3는 끝까지 참아서 마시멜로 두 개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로부터 10년 후 실시한 2차 연구 때문입니다. 마시멜로의 유혹을 이겨낸 아이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아이들을 비교한 것입니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절제한 아이들이 몸매도 날씬하고 사회 적응을 잘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또 SAT에서 210점이나 더 많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절제를 잘하는 아이들이 결국 목표도 이루고 절제 하는 못한 아이들 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절제하며 준비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 제일 마지막 열매가 절제의 열매입니다.

왜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서 절제를 마지막 열매로 말씀하셨을 까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열매들을 맺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결국 절제가 되지 않으면 덕이 될 수가 없고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아무리 좋은 것이지만 사랑도 지나치면 문제가 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브레이크 장치와 같은 역할이 바로 ‘절제’입니다. 절제한다는 것은 분명히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절제하는 만큼 목표에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얼마나 절제를 하고 계십니까?

그런데 무조건 절제만 한다고 해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하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준비해야 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준비가 필요합니다.

천천히 서두른다고 할 때, 서두른다는 것은 곧 준비하라는 의미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꿈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꿈이 곧 목표 아닙니까? 그런데 꿈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많고 꿈을 꾸는 사람들도 많은데, 꿈을 이루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꿈만 꾸고 목표만 정하고 준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꿈은 꿈만 꾼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꿈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이루는 것입니다. 목표는 목표만 거창하게 세운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이루는 것입니다.

래리 버드 이야기

미국 프로농구단 보스턴 셀틱스에서 활약한 전설 같은 스타인 래리 버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신인 시절 슈팅기술 말고는 별다른 재능이 없었습니다. 점프력에서는 리그 전체를 통틀어 253위였고, 스피드면에서도 146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미국 프로농구 역사상 최고 선수 5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래리 버드는 그의 화려한 경력만큼 이나 ‘부지런함’으로도 유명한 선수였습니다. 또 큰 재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별난 습관이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수준 이하의 팀과 경기할 때도 다른 선수들 보다 몇 시간 전에 경기장에 나와,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습관은 경기를 치를 농구 코트에서 머리를 숙인 채 혼자 천천히 공을 드리블 하면서 두세 시간 내내 코트를 이리저리 분주하게 오가곤 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스포츠 전문기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습니다.

“래리,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죠?”

“보시다시피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단순한 몸 풀기 연습 같지 않은데요. 고개를 푹 숙인 채 청소부처럼 코트 바닥만 살피던데요?”

“네, 맞습니다. 저는 지금 코트 바닥을 유심히 살피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래리는 빙긋 웃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래리 버드가 경기 전에 치르는 자신만의 ‘의식’이란, 다름 아닌 코트 점검이었습니다. 드리블 연습도 아니었고, 슈팅 연습도 아니었습니다. 코트 바닥에 혹시나 흠이 있는지, 있다면 어디에 어떤 형태의 흠이 있는지, 그 흠은 공을 어떤 방향으로 튀게 하는지, 코트를 미리 샅샅이 점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래리 버드는 경기 도중에 공이 불규칙한 방향으로 튀어오를 수 있는 가능성의 지점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래리 버드는 언제 어느 팀과 경기를 하더라도 자신만의 의식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후에 같은 곳에서 경기를 가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주일 남짓한 짧은 기간에도 코트 상태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래리 버드는 불규칙 바운드 때문에 패배했다는 푸념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대신,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끈기를 갖고 지속함으로써 누구보다 많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래리 버드가 자신의 준비가 없었다면 그는 꿈을 이룰 수도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천천히 서두르라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가운데 천천히 서두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는 운명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생애가 끝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았노라고 고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천천히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목표가 세워졌으면 이제 서둘러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절제해야 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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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3 Nov 2019 19:02:30
<![CDATA[참 교회는 종교개혁 이전에도 계속 존재해 왔다”]]> 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

 

권현익 | 세움북스 | 588쪽 | 35,000원

16세기 종교개혁 이전에도 ‘개혁된 교회’와 개혁자들이 존재했음을, 직접 현지에서 발로 뛰며 찾아낸 자료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 선교사인 저자는 마르틴 루터와 존 칼빈, 얀 후스, 존 위클리프 같은 위대한 몇몇 종교개혁자들 외에, 수많은 무명의 사역자와 성도들이 작은 점(點)으로서 존재했고, 그들의 헌신과 수고가 잇대어 선(線)으로서의 개혁 사상이 우리에게 전달됐음을 말하고자 한다.

특히 편견과 오해 때문에 일부에서는 분열주의자나 이단으로 묘사하는 발도인들(Waldenses), 바울인들(Pauliciens), 카타르인들(Cathars), 알비인들(Albigeois)을 종교개혁의 ‘뿌리’로서 소개하고 있다.

발도인들의 경우, 저자에 따르면 그들의 지도자인 피에르 발도(Pierre de Valdo, 1128-1202) 이전부터, 프랑스 동남쪽 산악 지역 피에몽(Piedmont) 계곡에서 초대교회 사도들의 가르침을 계승해 10세기 이상 존재했다고 한다.

그들은 구원관이 변질된 로마가톨릭 교회에 의해 마니교와 아리우스적 ‘이단’으로 정죄당해 핍박과 순교, 학살을 당해야 했다. 피에몽 계곡에서는 박해로 인해 1487년부터 1689년까지 200여년간 33회의 큰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박해로 인해 흩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마치 초대교회 사도들이 그랬듯 더 많은 지역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들이 왜 이단이 아닌지를 논증하고, 루터와 마르틴 부처, 하인리히 불링거 등 당대 종교개혁자들이 발도인들에 대해 언급한 내용들도 덧붙인다.

저자는 오늘날 터키 지역과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바울인들과 카타르인들, 알비인들도 이원론을 고수하는 마니교적 이단이 아니며, 이러한 인식은 당대 로마 교회가 주도한 ‘역사 공정(工程)’ 때문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발도파
▲발도인들 유적지. ⓒ크리스천투데이 DB
저자는 향후 <16세기 이후의 프랑스 개혁 교회사>를 통해, 본지에 일부 연재하기도 했던 위그노들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참 교회는 사도 교회의 가르침을 계승하면서, 그 복음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늘날까지 계속 존재해 왔다”며 “단지 지금까지 만연된 로마 교회 중심의 역사관, 그리고 개신교 역사학자들의 나태함 때문에 우리 스스로 진정한 사실을 적시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거짓 교회가 참 교회의 역사를 증명할 증거들을 묻어 버리고, 가능한 모든 문서 자료들과 서적들을 제거해 극히 희귀한 자료들만 남아 있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참 교회의 역사는 사라지지 아니할 뿐 아니라, 증언과 기록으로 남아 역사적 진실과 사실들을 토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참 교회가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교회를 보호하셨고, 그 교회는 이전 개혁 교회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보존하고, 계대하고, 전도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어떠한 핍박에서도 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장 합동 GMS 파송 프랑스 선교사인 저자 권현익 선교사는 총신대(B.A.)과 신대원(M.Div.)을 졸업하고, CCC 새생명 훈련원(NLTC) 과정 이수 후 평택 한광여고에서 근무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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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13 Nov 2019 19:01:38
<![CDATA[“무슬림형제단 출신은 난민, 탈북민은 강제북송?]]>

북한인권단체총연합회가 11일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탈북민 강제추방 저지 전국 탈북민 강력규탄집회'를 갖고 정부에 보내는 공개 질문장 및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흥광 북한인권단체총연합회 상임대표는 “예상 못한 전례 없는 반인도적 범죄가 자행돼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기자회견을 개최하게 됐다”며 “탈북민들은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 위협을 느끼며 혹시 잡혀갈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지난 7일 탈북 청년 두 사람이 눈은 가려진 채 입에 재갈까지 물려 북한 김정은에게 보내졌다. 16명을 죽였는지 증거 하나 없는 탈북 청년 두 사람은 흉악범이라는 단어로 5일만에 북송됐다. 이 사실은 반헌법, 위헌적, 반인권적 패악”이라며 “우리 탈북민들은 사죄와 재발방지를 약속 받고 탈북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기까지 사투를 벌일 것”이라고 했다.

허광일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의 국민적 권리를 부여 받는다”며 “강제북송된 탈북 청년도 무죄추정원칙으로 변호사를 통해 재판을 받아야 하는 철저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 선원들을 강제북송한 행위는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임을 규탄한다. 동시에 그것은 비인간적, 비인권적, 반인도적 범죄임을 국제사회에 성토한다”며 “우리는 북한인권단체총연합과 이 범죄를 자행한 책임자들을 고발하려 한다”고 했다.

최주활 탈북자동지회 회장은 “탈북자가 굶어 죽기까지 방치한 것에 대해 분노한데 이어 탈북자 청년 둘을 강제북송한 대한민국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자유와 인권을 존중한다는 정부가 청년을 강제 송환하면서 눈을 가리고 입에 재갈을 물렸다는 것은 도저히 일반적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다. 혹 대한민국을 공산화해서 적화통일 하려는 목적과 야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냐”고 호소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그간 문재인 정권이 북한 주민이 아닌 김정은의 편에 섰던 것을 보면 조그만 배에서 청년 2명이 16명을 둔기로 때려 죽인다는 것을 누가 믿는가? 제 생각으로는 북한 보위부의 말만 믿고 살인자 누명을 씌워 북한에 보낸 것 같다”며 “이번 사건을 조사한 영상을 온 국민에게 공개해 두 사람이 살인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와 인권을 말살한 이 범죄에 대해 ICC 재판 등을 통해 국제 사회 문제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주일영 탈북 대학생 트루스포럼 회장
▲주일영 탈북대학생 트루스포럼 회장이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김신의 기자

주일영 탈북대학생 트루스포럼 회장은 “북한 청년을 북한에 넘긴 것은 극악무도한 살인행위”라며 “이들이 설사 범죄자라 해도 강제북송에 대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무슬림형제단 출신 이집트인에게 난민 지위가 부여됐는데, 그야 말로 난민 신청자라 할지라도 강제송환 대상자다. 반면 탈북민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국민에 해당한다. 탈북민이 난민이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김태희 자유와인권을위한탈북민연대 대표는 “작은 배에 16명을 싣고 원산 앞 바다까지 어업을 하려고 왔다고 하는데 북한의 삼척동자에게도 납득되지 않는 말이다. 또 목숨을 부지하려고 피 묻은 배를 몰고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모든 탈북자는 이에 대해 북한의 실상에 대해 전혀 모르는 서푼짜리 시나리오로 평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를 향해 △헌법과 어떤 법률에도 없는 강제 추방을 자행한 이유 △범죄사실에 대해 밝히려 하지 않고 북한에 서둘러 보낸 이유 △국제법으로 금지된 송환임을 알면서도 김정은에게 보낸 이유 △북한 청년을 포박하고 입에 재갈까지 물린 이유 △탈북 청년이 16명을 살해한 증거 여부 △강제 추방한 탈북 청년 조사 기록 공개 가능 여부 등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이후 집회 참가자 일동은 성명서를 통해 “김정은이 살인 누명만 씌우면 언제든지 북한으로 끌려갈 수 있는 선례가 만들어진 이 전대미문의 사태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며 “탈북민들이 경악하는 것은 법치국가라는 대한민국의 ‘헌법’과 ‘북한이탈주민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휴지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헌법과 관례에 따라 북한 주민들도 우리나라 국민이며, 대한민국의 영토, 관할 내에 들어왔고 귀순 의사까지 밝힌 상황에서 그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대한민국의 사법권이 행사되었어야 했다”며 “북한이탈주민법 제9조는 보호대상자 결정 여부에 따라 보호 및 혜택을 받을지 결정할 뿐이지 강제 추방시키라는 조항은 어느 법률에도 없다. 북한 주민이 즉각 고문을 당하거나 처형당할 것을 알면서도 북송시킨 것은 고문방지협약(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반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의 제 3조 1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우리는 청와대와 정부, 통일부와 합심조사센터를 대상으로 이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다시는 귀순한 탈북자들이 김정은에게 제물로 처해지는 참변이 재발되지 않도록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북한주민 강제북송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전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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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2 Nov 2019 18:05:54
<![CDATA[환경적으로, 누군가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
적응을 잘 못하는 아동은 사람과 환경에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다. 아동은 다양한 사람과 상황에서 관계를 맺고 적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는 이미 사회성에 문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생활에서 계속 문제를 보일 수 있기에, 서둘러 개선해 주어야 한다. 적응을 잘 못하는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어려워하는 아동, 내면에 부정성이 많은 아동, 그리고 친구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아동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적응을 잘 못하는 아동은 다음 심리적 원인으로 이해해야 한다.

1. 억압된 자아의 결과

적응을 잘 못하는 아동은 내면의 자아가 억압되어 있다. 억압된 자아는 스스로 외부로 의견을 표출하면서 자아를 확대해 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면의 자아는 정신분석의 역동성으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역동성은 개인의 연구에 적용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이다. 설리반은 역동성을 개인의 대인관계와 정서적 기능을 특징짓는 비교적 지속되는 에너지 변형의 패턴으로 정의했다. 역동성의 에너지 원천은 개인의 신체적 욕구이며, 이러한 에너지 변형이 어떤 형태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습관처럼 반복되고 지속되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어떤 종류의 행동이 역동성을 가짐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설리반은 역동성이 성격을 연구하고 기술하는데 가장 작은 요소라고 생각하였다. 즉 역동성은 다른 사람과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개인 경험의 질과 양이 많아질수록, 역동성의 수도 더 많아진다. 넓은 의미에서 역동성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에서 개인의 행동 및 태도가 밖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아들러의 생활 양식과 유사하다.

여기에 인간상 형성은 개인이 자신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이미지는 욕구만족 및 불안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감정, 태도, 개념의 복합이기 때문이다.

2. 부정적 경험의 결과

적응을 잘 못하는 아동은 부정적 경험이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아동이 성장하면서 긍정성과 부정성을 모두 경험하지만, 적응을 잘 못하는 아동은 부정성을 자기의 방식대로 해소하지 못한 결과로 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설리반의 경험양식을 들어 이해를 시도해야 한다. 경험 양식에 있어 설리반은 개인이 세계를 경험하는 세 가지 다른 방식, 즉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는 세 가지 인지 혹은 사고의 수준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가 제안했던 세 가지는 경험 양식으로서 원형적, 병렬적, 통합적 경험에 대한 것이다. 이는 그 이해를 위해 더 설명이 요구된다.

원형적 경험은 조잡한 감각 단계의 사고를 가리킨다. 원형적이란 그리스어로 첫 번째 배열을 의미하며, 가장 순수하고 처음적인 경험이다. 이 경험은 인생의 가장 초기의 원초 경험으로 생후 몇 개월 동안에만 유아에게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지각하는 감각, 생각, 감정을 수반하며 서로 간에 어떤 관련성을 끌어내거나 해석함 없이 즉각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특성은 원형적 경험이 분리되어 관련이 없으며, 무선적이고 비조직적이며, 매우 순간적이며, 새로운 경험의 영향으로 묻혀버리기도 한다.

병렬적 경험은 사물끼리의 연관성을 잘 맺지 못하는 단계의 사고이다. 병렬적이란 사물을 나란히 놓지만, 서로 간에 관련을 짓지 못하는 배열을 의미한다.

유아가 이전에는 그에게 독립적이고 무의미한 자극에서 어떤 의미를 도출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이러한 사고 양식은 대략 동시에 발생하지만 논리적 관련이 없는 사건들을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3. 친구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상태

적응을 잘 못하는 아동에게는 내면에 불안이 자리한다. 불안은 주로 부정적 심리와 감정이 지배하며, 편안하지 않은 현상이다.

이 불안에 대해, 설리반은 대인관계의 상황에 주목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불안이 항상 대인관계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믿은 것이다. 사람간의 단기적 혹은 장기적인 건강치 못한 관계로부터 불안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불안을 유발하는 여러 원인들은 개인의 자기가치감과 유능감을 위협하여, 자아존중감을 손상시킨다.

불안에 대해, 성격을 방어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설리반이 제안했던 불안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방어는 해리, 병렬적 왜곡, 승화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해리(解離, dissociation)는 마음을 편치 않게 하는 성격의 일부가 그 사람의 지배를 벗어나 하나의 독립된 성격인 것처럼 행동하는 현상이다. 이는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현상으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경우이다.

설리반에게 이 해리의 방어 양식은 프로이트의 부정 및 억압과 매우 유사한 개념으로, 자기 역동성과 부합하지 않는 행동, 태도, 욕망을 의식적 자각으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이다. 해리의 기제는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에게 위협적인 것에 민감하게 작동한다.

억압에서처럼 개인은 단순히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없고, 불쾌한 경험을 보거나 듣지 않으며 회상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해리는 불안을 야기하는 모든 현실적 측면을 배제시키는 이러한 선택적 부주의를 유발한다.

병렬적 왜곡은 심리적 사실을 정당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삐딱하게 보는 현상이다. 이 방어 양식은 타인에 대한 개인의 반응이 자신이 경험해 왔던 나쁜 관계에 의해 편향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의미한다.

설리반은 이러한 왜곡이 우리의 대인관계에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아버지와 아들 간에 권위적으로 형성된 초기 대인관계가 고용주와 피고용인간의 현재 관계를 왜곡시킨다. 승화(昇華, sub-limation)는 방어 양식은 프로이트가 사용한 승화의 개념과 유사하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적응을 잘 못하는 아동을 둔 경우에 해당되는 부모라면, 전술한 원인을 참고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부모가 올바르게 양육을 하더라도, 반드시 원인이 될 만한 조건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신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개선 가능성이 보인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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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2 Nov 2019 18:03:00
<![CDATA["청소년은 내일의 리더가 아닌 바로 이 순간, 오늘의 리더"]]>  11일 WEA 2019 GA 전체 강연을 통해 '강력한 청년교회'로 세계 교회에 충격을 준 탄 서우 하우 목사(Pastor Tan Seow How, Heart of God church in Singapore)가 12일 오전 두 번째 강연을 이어가며 자신의 교회 청소년 리더들과 함께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 교회 리더들에게 다시 한 번 도전을 줬다.

하우 목사는 "청소년 캠프나 컨퍼런스를 하면 아이들이 처음에는 은혜를 받고 열정을 가지지만 1~2개월 지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며 "1년 후 다시 같은 캠프나 컨퍼런스를 할 때, 그들이 다시 뜨거워지지만, 우리는 단순한 부흥(revival)이 아닌, '튼튼한 교회'를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부흥이 아닌 '튼튼한 교회'가 받은 은혜를 유지시킬 수 있으며, 계속 성장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형교회가 오히려 튼튼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교회는 규모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한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하우 목사는 '튼튼한 교회'를 만들기 위한 여러 요소들을 설명했는데, 먼저 트레이닝과 시스템, 동원 등 부흥을 위한 요소들과 그것들을 담을 수 있는 '영적인 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집은 청소년들이 따뜻함을 느끼고 교제할 수 있는 곳"이라며 "청소년들을 동원해도 그들을 담을 그릇이 없다면 안 된다"면서 "그들이 마음 둘 곳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불어 섬김과 제자훈련 등을 통한 문화 형성도 교회를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라 말하고, "성도 80% 이상이 사역지를 섬기면 교회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하우 목사는 자신의 교회(HOGC)가 70% 이상이 25세 이하라 밝히고, "우리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무직자가 많은 교회"라며 "젊은이들이라 돈이 없고 가난한데, 수입이 없음에도 불구 500억 이상 되는 교회를 건축했다. 이는 기적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러한 기적이 매일 매주 일어 난다"고 했다. 그는 "청소년들이 교회 헌금을 하고 직접 집을 짓기 때문"이라 말하고, 다음 세대를 키우려는 우리의 마음 자세와 사고방식을 바꿀 것을 요청했다.

먼저 하우 목사는 "청소년은 내일의 리더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 오늘의 리더"라 말하고, "그들이 ‘우리의 미래요 소망’이지만, 이 말에 절반만 동의 한다"면서 "그들은 내일의 리더일 뿐만 아니라 오늘의 리더"라 했다. 덧붙여 "청소년들이 하나님의 비전을 갖고 살지 못하면, 세상이 그들을 데려갈 것"이라며 "세상이 그들의 마음을 훔치기 전에, 하나님의 목적과 비전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목적보다 더 큰 것은 우리에게 없다"고 했다.

이어 하우 목사는 HOGC의 청소년 리더 3인을 소개했다. 먼저 어려서부터 찬양 사역을 통해 리더가 된 형제, 또 어려서부터 미디어 담당을 하며 교회에서 성장한 미디어팀 리더 자매, 불우한 환경 가운데 HOGC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삶이 변화되어 교회 전임 사역자가 된 자매 등이었다. 이들은 '청소년은 내일의 리더가 아닌 오늘의 리더'라는 하우 목사의 믿음이 어떻게 적용되어 삶이 바뀌었는지를 간증하고, 현재 영적 리더로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증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하우 목사는 "무대에서 쇼를 하면서 그들(청소년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좋고 대단한지' 깊은 인상만 심어주려는 것이 아닌, 그들을 무대에 초대해 '우리는 너희가 필요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14살 아이가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 하겠는가 직접 경기에 뛰는 것을 좋아 하겠는가"를 묻고, "사실 직접 경기를 뛰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며 "그들이 그냥 '놀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고 했다.

또 하우 목사는 "세대는 '교체'하는 것이 아닌, 겹겹의 리더를 세워 '강화'하는 것"이라며 "전통적 교회는 (청소년들에게) 믿음을 세우게 하고, 행동하게 하고, 그 다음 소속감을 주도록 만드는데, 우리 교회는 먼저 환경을 조성해 소속감을 준 후 믿고 행동하게 만들어 정착률이 높다"고 했다. 그는 "교회가 집처럼 느껴져야 한다"고 말하고, "믿지 않는 청소년들도 몇 년 동안 계속 HOGC에 오는데, 교회가 집처럼 느껴져 그런다"며 "언젠가 그들도 믿고 크리스천이 되어 행동할 것이라 믿는다. 주인의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EC%B2%AD%EC%86%8C%EB%85%84%EC%9D%80-%EB%82%B4%EC%9D%BC%EC%9D%98-%EB%A6%AC%EB%8D%94%EA%B0%80-%EC%95%84%EB%8B%8C-%EB%B0%94%EB%A1%9C-%EC%9D%B4-%EC%88%9C%EA%B0%84-%EC%98%A4%EB%8A%98%EC%9D%98-%EB%A6%AC%EB%8D%94-852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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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2 Nov 2019 17:59:36
<![CDATA[카니예 웨스트 ‘Jesus Is King’ 빌보드 차트 1위 달성]]> 래퍼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의 새 앨범 ‘JESUS IS KING’이 포스트 말론(Post Malone)을 재치고 빌보드 차트 1위를 달성했다.

 

지난달 25일 발매된 ‘JESUS IS KING’은 카니예 웨스트의 9번째 정규 앨범으로 “주님은 나의 빛”임을 찬양하는 가스펠 힙합이다. 여러 차례 연기되며 차기작으로 알려진 ‘Yandhi’ 대신 나온 정규앨범이다.

JESUS IS KING
▲‘JESUS IS KING’ 앨범자켓.

앨범의 첫 트랙은 ‘에브리 아워(Every Hour)’로 성가대 합창으로 시작한다. 이어 타이틀인 ‘셀라(Selah)’가 나온다. ‘셀라’는 히브리어로 ‘찬양하다’는 뜻으로 가사는 “하나님은 왕”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임을 고백하며 시작한다. 또 가사는 “사람들은 월요일이 한 주의 시작이라고 말하지만 주일의 강한 시작”,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을 것”이라며 성경구절 요한복음 8장 33절(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과 36절(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을 언급한다. 곡의 끝 무렵에서는 “누가복음에 쓰여진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며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 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거짓’을 말하는 세상과 ‘진실’을 말하는 그리스도인을 대조한다.

세 번째 트랙에서는 타이틀인 ‘팔로우 갓(Follow God)’이, 이후 ‘클로즈드 온 선데이(Closed On Suday)’, ‘온 갓(On God)’, ‘에브리띵 위 니드(Everything We Need)’, ‘워터(Water)’, ‘갓 이즈(God Is)’, ‘핸즈 온(Hands On)’, ‘유즈 디스 가스펠(Use This Gospel)’, ‘지저스 이스 로드(Jesus is Lord)’까지 총 11곡은 일관된 ‘예수 구원’과 ‘찬양’을 힘차게 노래한다.

카니예 웨스트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의 앨범 ‘JESUS IS KING’ 수록곡 ‘Closed On Sunday’의 라이브 녹음 현장.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공식 유튜브 화면 갈무리

한편 지난 2004년 1집 ‘The College Dropout’으로 본격 데뷔한 카니예 웨스트는 20회 이상 그래미어워드 수상을 하며 현대 미국 팝 음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 아티스트로 자리잡았다. 미국 주간지 ‘타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두차례 선정되기도 했다.

특별히 카니예 웨스트는 올해 1월부터 ‘선데이 서비스(Sunday Service)’라는 이름으로 음악 예배를 시작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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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7 Nov 2019 18:32:01
<![CDATA[영적 성장, 믿음의 도전이란 무엇인가?]]> 본문: 마태복음 14장 22-33절

 

 

 

르상티망이란?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르상티망은 프랑어로 원한,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반복되어 마음 속에 쌓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고급 프렌체 레스토랑 갈 필요 없어, 파스타 체인점이면 충분해. 다들 명품을 왜 그렇게 좋아할까? 퀄리티는 거기서 거긴데, 난 보세가 좋아.”

언뜻 보기에 이 말은 겸손한 발언처럼 들리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르상티망’에 사로잡혀 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르상티망은 철학에서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 품는 시기심을 말합니다.

르상티망, 변명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철학자 니체가 제시한 르상티망은 조금 더 폭넓은 개념입니다. 이솝 우화에 보면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가 니체의 르상티망을 아주 쉽게 설명해 줍니다.

어느 날, 여우가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포도를 따려고 애를 써도 손이 닿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우는 ‘이 포도는 엄청 신게 분명해 이걸 누가 먹겠어’ 라고 화를 내며 가 버립니다. 여우는 손이 닿지 않은 포도에 대한 분한 마음을 ‘저 포도는 엄청 시다’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풀어 버립니다.

니체는 바로 이 점을 문제로 삼았습니다. 니체는 르상티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열등감을 노력이나 도전으로 해소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대신 열등감의 원천인 ‘강한 타자’를 부정하며, 자신을 긍정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 갈 필요 없어. 파스타 체인점이면 충분해” 라는 발언에는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은 격식 높은 음식점이며 그 곳에서 식사하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다”는 가치관을 뒤엎고 싶은 르상티망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니체의 이야기가 공감이 됩니다. 우리에게도 어쩌면 르상티망이 있는지 모릅니다. 르상티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르상티망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전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을 한다는 것입니다.

도전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다

도전의 반대말이 혹시 무엇인지 아십니까? 실패라고 생각하십니까? 도전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입니다. 무엇인가에 대해 도전하다 보면, 실패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는 도전했기 때문에 경험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 실패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한두 번 실패를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수없는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동일하게 이런 말을 합니다.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도전할 수 있었고 결국 이 자리에 까지 오게 됐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실패는 또 하나의 큰 도전인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 사람은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또한 볼튼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살면서 미쳤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너는 단 한 번도 목숨 걸고 도전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성장은 도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전하는 삶보다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안주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렵습니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많은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고 거기에 몰려듭니다.

젊은이들에게 도전 정신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젊은 패기는 사라져 버리고 7포세대니 5포세대니 3포세대니 하면서 자신들을 포기한 세대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마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힘든 상황이면 이런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 계신 어르신들이 살던 시대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대가 아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시대에 포기하지 않고 살아오셨기에 오늘 대한민국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전하는 사람이 없이 안주하는 사람들만 있으면,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전하는 것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다

2017년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계속하는 80대 할머니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2017년 7월 15일 영국 데일리메일은 그 당시 86세였던 용감한 트리쉬 웨그스태프 할머니가 매년 고난이도의 익스트림 스포츠에 도전하며 선행을 이어왔다고 보도했습니다.

자선 단체 활동을 시작한지 10년 만에 웨그스태프 할머니는 15만 파운드(약 2억 2,500만원)의 자선기금을 모았습니다. 군인의 아내로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할머니는 2007년 남편이 죽은 후 돌발적인 모험을 즐기는 여성이 됐습니다.

할머니가 도전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도전이 절실하게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도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첫 도전은 ‘수족관에서 상어와 함께 수영하기’였습니다. 그리고 2010년, 포츠머스의 100m 높이 스피내이커 타워(Spinnaker Tower)에서 고정된 로프를 이용해 하강하는 ‘압자일렌’을 완수했습니다. 2016년에는 날고 있는 비행기 위에서 하는 곡예인 ‘윙 워킹’에도 성공했습니다. 2017년에는 패러글라이딩과 스카이다이빙도 성공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난 지나치게 늙어서 그것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걸 들어왔다. 이제 그 말을 멈추고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하도록 장려할 것이다. 슬프게도 모든 연령대에 사람들이 TV 앞에 앉아서 혹은 핸드폰을 만지는 것 외에는 많은 일에 도전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말에 공감이 되지 않으십니까?

201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나 패션쇼 런웨이에서 바지만 입은 80세 남성 모델이 당당하게 워킹을 했습니다. 그의 운동으로 단련된 군살 없는 몸매에, 사람들은 감탄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왕 데슌(王德順)이라는 할아버지였습니다. 80세 나이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늙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도전할 수 있느냐고 자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80세가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왜 이렇게 도전하는 삶을 사는 것일까요?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연세 높으신 어르신들이 계속해서 도전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도 당연히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는 도전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계십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통해서 도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베드로의 도전

오늘 말씀에서도 도전하는 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볼 때마다 베드로가 믿음이 없어서 물에 빠진 사건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을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물위를 걷는 다는 것은 도전이었습니다. 상식을 깨는 베드로의 도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시고 난 이후에 제자들을 재촉해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남아 있는 무리들을 보내시고 홀로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십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탄 배가 물결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밤 사경에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밤 사경은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를 말합니다.

배에 있던 제자들은 그 깊은 밤에 무엇인가 시꺼먼 물체가 보이니까, 너무 놀라서 유령인줄 알고 무서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나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마 14:27)”고 말씀해 주십니다.

성격 급한 베드로는 물 위에 걸어오시는 분이 유령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

어떻게 보면 베드로의 말은 얼마나 엉뚱합니까? 그 밤에 물 위를 걸어오신 분이 주님이라고 하셨다면, 빨리 주님에게 이쪽으로 오시라고 해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정말 주님이시거든 자신을 명하사 물 위를 걸어서 오라고 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말대로 오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 주님께로 갔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지금 베드로 입장이라면 물 위를 걸어가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하셨지만,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걷기 위해 발을 내딛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베드로에게 이것은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내뱉은 말이지만, 이것을 지키는 것은 베드로에게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 위를 걷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과감하게 발을 내딛었습니다. 도전하였습니다. 그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비록 그가 바람을 보고 바다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는 바다 위를 걷는데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바다 위를 걸었던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라고 하셨는데 불구하고 도전하지 않았다면 그는 물 위를 걷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배에는 베드로 외에 다른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와 같이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도전하지 않았기에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이 도전 정신은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이어집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다고 전해져 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자신은 예수님처럼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 없다고 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도전정신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

바울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는 이유는 도전정신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바울이 이룬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고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계속 달려갈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전해야 하는 이유

그런데 우리가 왜 나이와 환경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도전해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 도전해야 목표를 이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2019년을 시작하면서 각자 나름대로 올 한 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목표를 세우는 것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폼으로 세워 놓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람들은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이루어지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목표를 이루기 위해는 내가 노력해야 합니다. 도전해야 합니다. 도전하지 않고는 목표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다이어트를 하기로 목표로 삼았다면,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그동안 내가 하지 않았던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하지 않았던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많이 먹던 음식도 줄여야 합니다. 이렇게 도전할 때 다이어트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다이어트라는 한 가지 예를 들었지만, 어떤 목표를 세웠던 그 목표를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전해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도전하지 않고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둘째, 도전하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분명히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한계라고 여기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한계라는 것은 어떤 물체나 상황처럼 눈에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마라톤의 골인지점처럼 미리 정확하게 규정 돼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나의 마음 속에 내가 그어놓은 선일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스스로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정말 나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한계가 자신의 진짜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신 많은 분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도저히 힘들어서 할 수 없다고 중도에서 포기하려는 그때가 그 일의 정점에 도달한 때이다.”

이 말은 이것이 나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포기하지 말고 더 견디라는 것입니다. 곧 나의 한계가 나의 한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더 도전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도전대상은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신광철 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나를 먼저 바꾸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기엔 개인으로서 나 자신을 너무 작다. 하지만 나를 바꾸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 내 마음 속의 산이다. 마음 속에 있는 산을 넘지 못한 사람은 어느 것도 할 수 없다. 모든 도전은 마음 속의 산을 넘는 순간 이루어진다. 도전하는 인생이 되려면 마음 속의 산부터 점령하라. 그러면 길이 보인다. 그 길로 가면 세상은 문을 열어준다.”

마음 속의 산을 점령하는 도전을 해보십시오. 여러분의 한계를 뛰어넘게 될 것입니다. 열한 살 때 완전색맹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흑백천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미대에 입학했습니다.

색맹인 사람이 미대에 입학하는 것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따가웠습니다. 그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하고 미대에 입학한 것은 비록 색명이지만 색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이것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이런 꿈을 가지고 도전한 그는 2003년 인공지능학 교수 애덤 몬탠돈(Adam Montandon)을 만나면서 꿈을 이루게 됩니다. 몬탠돈 교수는 그에게 색 고유의 파장을 주파수로 변환해주는 색상 탐지기계 ‘아이보그(eyeborg)’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피나는 연습을 통해 각 색의 고유한 주파수를 기억함으로써,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360가지 색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색을 볼 수 없지만 색을 들을 수 있는’ 화가 닐 하르비손(Neil Harbisson)입니다.

그는 ‘아이보그’의 도움을 받아 여느 화가와 마차가지로 갖가지 색깔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닐 하르비손은 색명이지만 도전함으로 인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색깔들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 되었습니다. 도전하는 자만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셋째, 도전하면 성장하게 됩니다. 성장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전할 때 성장이 일어납니다.

도전하다 보면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실패했다 해서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까? 퇴보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실패를 실패로만 끝내면 그것은 퇴보입니다. 하지만 실패를 교훈 삼으면 그 실패는 성장의 동력이 됩니다. 도전을 통해 실패도 하고 성취도 하면서 점점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장수 예능 프로그램 SBS <정글의 법칙>이 있습니다. <정글의 법칙>은 이제 김병만 씨를 상징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올해 46살입니다.

김병만 씨는 1995년 연극배우 생활을 하다 개그맨에 도전하기 위해 수차례 개그맨 시험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개그맨 공채 시험에만 연속으로 7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개그맨이 되기 위해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안 해 본일 없이 많은 고생을 하던 끝에 드디어 2002년 KBS공채 17기 개그맨으로 본격 데뷔를 하게 됩니다.

그는 개그맨이 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였습니다. 지금 그는 비행기 조종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김병만 씨는 도전하는 삶을 살았기에 성장했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 도전하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전을 계속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끊임없이 해야 하는 도전은 영적 도전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영적 도전을 계속이어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엄청난 영적 도전을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2018년보다는 더 나은 영적 성장을 위해 영적 도전을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 읽는 것, 기도하는 것, 예배드리는 것, 전도하는 것을 비롯한 영적 성장을 위해 여러분이 하셔서 할 것들을, 2018년보다 2019년에는 조금이라도 더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도전할 때 영적인 성장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도전을 하라

특별히 올 한 해 영적 도전 가운데 믿음의 도전을 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도전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가 돼서 따르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해가 되기 때문에 그냥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에게 도전입니다.

실제로 베드로의 도전은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다면, 주님께 말씀하신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는 바다위에 발을 내딛지 못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의 도전을 기꺼이 하였기에 바다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영웅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도전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노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가 120년 동안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는 땅에서, 그것도 산에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것 자체가 믿음의 도전 아닙니까? 하나님께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순종한 것이 믿음의 도전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바친 것이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모세가 200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오는 것이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무 말 하지 않고 여리고성을 도는 것이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습니다. 도전에는 ‘이만큼이면 됐다’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도전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도전하면 나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은 무엇보다 영적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영적도전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도전을 해야 합니다.

안주하지 않고 올 한 해뿐 아니라 남은 생애 동안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 예기치 못한 은혜와 열매를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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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7 Nov 2019 18:31:12
<![CDATA[영적 능력,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힘]]>
본문: 마태복음 10장 32-33절

 

 

본문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시인(是認)과 시인, 부인(否認)과 부인으로 일체성의 원리를 드러내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는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중요한 진리와 더불어 엄청난 약속을 주시고 있다는 점에서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배경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의 존재를 인정하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32-33절)”.

이 말씀은 주님께서 제자들의 전도여행에 유대인들로부터 반대와 배척을 받을 것을 예상하시고, 담대하라고 격려하시는 모습입니다. 박해자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장차 기독교가 로마 정부로부터 혹심한 박해를 받는다고 해도, 그들 앞에서 굴복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시면서 당부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그 당부의 핵심이 바로 주님을 시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시인한다는 것이요,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시인(是認)하다’를 사전에 찾으면, “옳다고 하거나 그러하다고 인정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시인한다는 주님을 인정한다는 말이 됩니다.

누가복음 23장 39-43절에 행악자의 사건이 이렇게 나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는 마지막에 주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그 하나만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실로 그는 억세게 재수가 좋은 사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 주님의 존재를 인정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라

개인적으로, 주님을 시인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말씀은 인정하면 우리 삶의 지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당연시되던 일들이 이제는 토론되고 협상되고 동의를 얻어야 하는 때입니다. 무대 아래 관객은 이제 단순히 관람하는 일을 넘어, 비평자로 둔갑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중간지대가 없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낡은 흑백논리(黑白論理)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도피처를 찾으려는 형태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시대는 타협이 없는 격동의 시대로 치닫고 있습니다. 점차 극과 극의 첨예한 대립만이 난무하는 세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복잡하고 힘든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정신에너지입니다. 실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어야 살 수 있는 절실한 때입니다.

다만 부정적인 에너지는 자신도 모르게 점차로 쓸모없고 불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반면 긍정적인 에너지는 자신을 쓸모 있고 반드시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여기에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생활’이 정신에너지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과 함께 엄청난 능력으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라

전도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운 일들은 능력을 가질 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니 생활하면서 당하게 되는 어려움도, 모두 능력이 있을 때 감당할 수 있고 이겨내게 됩니다.

큰 사람, 즉 대인(大人)에게도 우리에게도, 능력은 삶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또 능력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대우를 받지만,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어디서나 천대를 받습니다. 그래서 각자는 저마다의 능력을 소유하려 얼마나 노력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 능력 중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역시 영적 능력입니다.

영적 능력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힘입니다. 인간적인 이성(理性)이나 정신력을 압도하는 힘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한계를 뛰어넘는 막강한 힘입니다. 인간의 어떤 힘도 영적인 능력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능력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때만 생겨난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8장 31절에 “너희가 내 말대로 살면 내 제자가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영적 능력은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으므로, 모든 능력을 제압할 수 있는 힘입니다. 이는 우리가 살면서 중요한 능력이 되는 이유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우리가 살면서 세상을 넉넉하게 이기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영적인 능력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의 존재를 시인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시인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능력을 얻기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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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7 Nov 2019 18:27:31
<![CDATA[“더 이상 빈부귀천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한 번은 백정 일을 하는 조천만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교회에 인도되어 나왔다.

 

 

남궁억은 그를 위해 기도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조천만 씨는 오늘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정성껏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배당 안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분의 차별이 분명하던 시절이었기에 신분이 천한 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남궁억은 백정 조천만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썼던 것이다.

“장로님, 저런 비천한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시면 우리 양반들의 체면이 어찌 됩니까.”

잘 차려입은 어떤 영감의 말에 남궁억이 대꾸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합니다. 더 이상 빈부귀천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누가 좋아서 그런 일을 합니까. 모든 직업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백정이 없으면 누가 그 힘든 일을 합니까. 아무 일도 안 하고 놀며 먹는 사람보다는 무슨 일이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더 귀합니다.”

“그러려거든 장로님 혼자서 다 하십시오. 우린 저런 사람과 함께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에게 따스한 사랑을 평등하게 베푸십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우리 민족을 함께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해줍니까? 일본놈들이 해준답니까?”

남궁억의 사려 깊은 말에 그 양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도 차츰 진리를 깨닫고는 오히려 더 존경했다.

남궁억은 눈앞의 작은 이해관계보다는 항상 우리 민족 전체의 행복을 먼저 생각했다.

어느 날, 남궁억은 연희전문학교의 졸업식에서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때는 2월 초순이라 추운데 그는 보리울에서 서울의 연희전문학교까지 1백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사흘 내내 걸어서 갔다.

“선생님, 차를 타고 가시죠.”

제자의 권유에 남궁억은 대꾸했다.

“우리 손으로 차를 만들면 그때나 가서 타세. 일본이 만든 차를 타느니 걷는 게 더 마음 편하네.”

남궁억은 국산품을 애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스스로 앞장서 실천했다. 조선을 점령한 일본은 자기네들이 만든 각종 생활용품을 한반도로 들여보냈다. 신발에서 라디오와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편리하고 실용적인 물품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당시 많은 지도자들과 돈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욕하면서도 개화 바람을 강조하며 그런 외제 물건들을 선호했다.

남궁억 역시 개화를 강조하고 또 일본의 신제품이 편리하다는 것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우리 제품을 애용하지 않으면 우리 산업이 발전할 수 없으며, 언제까지나 일본에 예속된다.’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좀 허술하고 불편한 점을 감수하고라도 국산품을 아껴 썼던 것이다.

또한 수많은 백성들이 가난에 빠져 겨우 연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하게 생활했다. 수많은 지도자들이 양복에 고급 외투를 걸치고 번쩍거리는 가죽 구두를 신고 다녔지만, 남궁억은 한결같이 무명 옷에 흰 고무신이나 짚신을 신고 다녔다.

얼마나 검박했던지 십전짜리 밀짚모자가 떨어지면 깁고 또 기워서 10년을 넘게 쓰고 다닐 정도였다. 그건 결코 가난하다거나 성격이 좀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검소하게 살면서도 자기 자신의 재산을 선뜻 털어내어 학교를 짓고 가난한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을 무료로 가르친 사람이었다.

 

보리울의 달 한서 남궁억
▲소설 <보리울의 달> 저자 김영권, 제작 키아츠 <보리울의 달>은 한서 남궁억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한서 남궁억 선생의 소설화된 파란만장한 인생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통찰하도록 안내한다. 만화 <한서 남궁억> 저자 김재욱, 그림 최현정, 제작 키아츠 <한서 남궁억>은 남궁억 선생의 위대하고도 큰 뜻을 남녀노소 모든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만화로 표현한 책이다. 남궁억 선생이 여러 등장인물과 역사를 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실감나고 흥미롭게 담겨 있다.
남궁억은 고무신을 신은 채 그 먼 길을 걸어 놀미재를 넘고 설악을 거쳐 청평까지 꼬박 밤낮을 걸었다. 청평에서 하루를 묵고 경성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다음날 그는 연희전문학교로 갔다. 차례가 되자 귀빈석의 그 많은 참석자 가운데 유일하게 하얀 한복을 입은 남궁억이 일어섰다. 그는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내가 우리 집에서 여러분을 보려고 놀미재라는 높은 고개를 넘을 때, 무릎이 묻히는 눈길을 걸어오면서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만 따라오다가 개울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길이 아닌 곳으로 발자국이 났으므로 나는 그 자국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잘 아는 산길이기 때문에 원래의 길을 찾아서 생 눈을 뚫고 발자국을 내어 내 뒤에 오는 사람은 바른 자국을 따라오도록 한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여러분만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 면에 하나 있을까말까 한 정도입니다. 이제 교문을 나서는 여러분들이 옮겨야 할 발길의 방향은 어디입니까? 목자도 없이 방황하는 어린 양들을 구하러 우리 고향인 농촌으로 가지 않으시렵니까? 강자를 도와 부질없는 권세에 만족해 할 것이 아니라, 약자를 살려 같이 강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에게 간절히 부탁합니다. 내가 산속의 눈길을 걸을 때 생 눈을 뚫고 원래 길을 찾아 걸은 것처럼, 여러분이 바로 걸어야 뒤에 따르는 사람도 바른 길을 걸을 것이니 아무쪼록 본래의 갈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연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와 오래도록 이어졌다.

민족을 위해 일할 젊은 인재들을 격려하기 위해 그는 늙은 몸을 이끌고 먼 길을 걷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민족의 인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어느 날, 유리봉에서 기도를 마친 그는 노랫말을 하나 지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금일에 일 가려고 누구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 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곡식 익어 거둘 때니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 가려고 누구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 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이 노래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가 우리 민족을 위해 일을 할 여러 분야의 인재들을 일떠서게 했다. 또한 ‘일하러 가세’라는 제목으로 찬송가에 편입되어 교회에서 가장 애창되는 노래가 되었다.

얼마 후 일본에 의해 금지곡이 되었지만, 이미 찬송가에 수록되었기 때문에 신자들이 부르는 것까지 쉽사리 막을 수는 없었다.

 

김영권 남궁억
▲본지에 <꽃불 영혼>에 이어 <보리울의 달>을 연재하고 있는 김영권 작가.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 원고 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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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6 Nov 2019 17:58:17
<![CDATA[식물이 태양보다 먼저 창조된 이유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창조

 

 

하나님은 첫째 날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창조(창 1:1)하셨고 특별히 빛(창 1:3-5)을 창조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첫째 날 우주의 기본 구성 요소를 만드셨습니다. 둘째 날에는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시고, 궁창을 하늘이라 칭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바다와 땅을 만드셨습니다(창 1:9-10절). 이미 땅이 있었고(땅이 혼돈) 바다(궁창 아래의 물)가 있었는데 어찌된 일일까요? 혹시 중력을 만드신 걸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무중력 상태의 땅과 물이라면 물이 둥둥 떠 있고 땅이 혼돈(창 1:2절)한 것이 이해가 갑니다. 물론 이것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내용이 아니기에 상상이고 해석입니다.

하나님은 (중력 속에서) 물이 모이고 뭍이 드러나게 하심으로 본격적으로 세상의 일정한 질서를 만들어가셨습니다(렘 5:22). 이렇게 낮, 밤, 궁창(하늘), 땅, 바다 이 다섯 가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이름을 지으셨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는데 중요한 배경(바탕)이 됩니다. 그리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이것들의 주관자요 지배자이십니다. 이것들이 모두 인간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창 1:10).

최초의 생명체 식물 창조

창조주 하나님은 최초 생명체 식물을 셋째 날 만드셨습니다(창 1:11-12절). 하나님은 식물(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가 진 열매 맺는 과목)을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진화론은 물고기가 먼저 만들어진 후 대부분의 식물이 진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반대의 주장도 있겠지요. 그러나 성경은 식물이 종류대로 먼저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동물과 식물은 이렇게 성경적으로 전혀 다릅니다. 둘 다 생명체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동물에게는 생명("네페쉬")이 있는 반면 식물에게는 "네페쉬"(Nepesh)가 없습니다.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창 1:11절)을 창조했다는 언급은 모든 식물을 만드셨음에 대한 강조 용법입니다! 풀("에세브")은 풀, 풀잎, 목초로 번역되고 있으나 채소(창 2:5, 출 9:22)로도 번역됩니다. 씨 맺는 채소("쩨라")의 이 "씨"는 자손(창 12:7), 후손(창 3:15), 자식(레 20:2,3,4), 인종(창 19:32), 후사(後嗣, 룻 4:12, 삼상 2:20)의 씨에도 적용이 되는 단어입니다.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에츠")은 나무, 목재, 나무로도 번역되고 "씨"("페리")는 씨뿐 아니라 과일, 실과, 열매, 소생 등으로 번역이 됩니다. 이렇게 창세기는 모든 식물이 함께 창조되었음을 강조합니다.

태양 없이 식물을 먼저 창조(?)

그렇다면 식물이 태양보다 먼저 창조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의 생각이 곧 창조주의 생각은 아닙니다. 인간이 성경을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초월의 창조는 내재(內在)의 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과학적 상식과 다르게 태양보다도 먼저 초목과 나무를 먼저 만드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습니다.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상식으로는 식물보다 태양을 먼저 우선하여 떠올리게 되지요. 그래서 창조과학의 원조과학자 헨리 모리스는 태양을 대체하는 빛(광명)이 먼저 식물을 비추고 태양이 창조된 이후에는 첫째 날 창조된 빛(광명)은 태양으로 대체되었다고 해석하였지요. 이것이 창조과학적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양보다 식물을 먼저 창조한 섭리(창조 계시는 과학적 설명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창세기 1장 계시는 과학이 아니라 초월적 사건이요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계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차원을 초월하는 계시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피조물인 인간의 상식이나 생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여 태양보다 빛을 먼저 만드시고 식물을 창조 하셨습니다.

(2) 둘째, 칼빈은 모든 것은 인간의 생각이 아닌 모든 일이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태양이나 달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식물을 먼저 만드셨다고 주석합니다.

(3) 따라서 빛을 만드신(첫째 날) 다음 태양보다 먼저 셋째 날 식물을 창조한 본질은, 인간 복지를 위해 땅이 계속해서 소산을 내야한다는 인간적 당위성이 그 "본질"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말씀으로 빛 다음 식물을 태양보다 먼저 창조하셨다는 것을 창세기 1장은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창조와 구속) 계시의 신비

우리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초월 계시인 창세기 1장을 온전히 해석한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창조 계시는 그 자체가 초월적 신비의 계시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신비주의는 아니나 그 본질은 신비한 계시(성경의 창조와 타락과 구속과 영생의 계시)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초월적 창조 계시를 억지로 내재의 과학으로 퍼즐 맞추기처럼 해석한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더라도 그리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심은 우리 인간을 향하신 준비요 사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마 6:26). 보잘 것 없는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그 사귐을 향한 사랑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고귀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십자가를 통한 은혜의 보혈로 죄악을 씻고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하고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시 50:9-13)로 주시는 것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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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6 Nov 2019 17:57:28
<![CDATA[개신교인 절반이상... '낙태는 잘못', '동성애는 죄']]> (사)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은 급변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들 가운데 특별히 개신교계에서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주제를 선별해, 개신교인의 인식 현황을 조사 했다. 정치, 경제, 사회, 통일 및 남북관계, 환경 등의 분야에 걸쳐 사회인식조사를 진행했다. 개신교인 1,000명과 비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다음은 문항에 대한 응답비율이다.

1. 정치 분야

 1) 다인종, 다문화 시대 타자에 대한 감수성,
:개신교인이 비개신교인들 보다 낮고, 20대 젊은 층에서 난민에 대한 반감 두드러져

 

‘난민은 이슬람 등 불온한 문화를 전파하므로 임시 보호라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답한 적극 반대층이 개신교인은 23.0%, 비개신교인은 18.1%로 나타났다. 5% 가까운 차이다. 눈여겨보아야할 사항은 20대의 수치다. 개신교인 20대 청년층의 난민반대 목소리가 개신교 평균보다 7% 가까이 높은 30.6%로 개신교 전 세대 중 1위에 올랐고, 비개신교인 20대 역시 비개신교인 평균 반대율 18.1% 보다 6% 이상 높은 24.7%로 역시 비개신교인 전 세대 중 1위로 등극했다.

 

기사연 한국기독교인 실태 조사 2019
©기사연

2) 전광훈 목사의 언행(문재인 하야발언)에 대한 의견
:개신교인 대부분(86.4%)이 부적하다고 생각, 하지만 소수의 지지그룹도 존재

전광훈 목사의 최근 언행에 대한 의견은 개신교인 3명 중 2명이(64.4%) 전광훈 목사의 언행에 대해 ‘전광훈 목사는 한국교회를 대표하지도 않고 기독교의 위상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우려가 된다’는 응답율은 22.2%, ‘다소 지나치나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10.1%, ‘적극 지지한다’는 3.3%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13.4%의 개신교인들은 전광훈 목사의 언행에 동의를 한다는 이야기이고, 22.2%는 형식과 표현에는 반감이 있으나 심정적으로는 부동층으로 돌아설 수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기사연 한국기독교인 실태 조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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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독교인의 정치참여와 태극기 집회
:부정적 의견이 앞도적으로 높아, 그러나 우격다짐 시끄러운 소수

개신교인 5명중 4명 가까이(79.5%)는 ‘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이 기독교를 표방하는 정당을 창당하여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찬성율은 5.2%에 그쳤다. ‘태극기부대 집회에 기독교인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4명 중 3명 가량(74.4%)이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보였으며, 7.5%는 ‘긍정적이다’, 18.1%는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태극기 부대 참여 경험’을 묻는 질문에서는 참여해 본 경험은 2.9%이며, 5회 미만 참여가 2.6%, 5회 이상 참여가 0.3%로 나타났다.

기사연 한국기독교인 실태 조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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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통일, 평화 분야

 1) 평화적 통일의 필요와 기대, 민족적 당위보다 경제적 성장이 우위, 군사적 위협도 중요한 여전히 문제

한반도 통일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개신교인 67.7%가 ‘필요하다’라고 대답하고 있으며 이는 비개신교인(56.6%)보다 조금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통일의 방식을 묻는 질문에서는 ‘통일을 서두르기보다 여건이 성숙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응답률이 65.2%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전쟁을 제외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빨리 통일이 되는 것이 좋다’(개신교인 23.3%), ‘통일을 하지 않은 현재 그대로가 좋다’(개신교인 7.3%)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어떤 댓가(전쟁을 포함)를 치르더라도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두 집단 모두 2% 미만으로 가장 적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통일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으므로’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다는 점이다(개신교인 44.6%, 비개신교인 48.2%). 이는 전통적으로 (혹은 이념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던 통일의 이유, 즉 ‘같은 민족이니까’라고 응답한 것에 두 배를 웃도는 결과이다. 다시 말해,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이유가 같은 민족성을 이유로 하는 이념적 이유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사연 한국기독교인 실태 조사 2019
©기사연
기사연 한국기독교인 실태 조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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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신교인의 통일 의식 형성, 주로 언론 보도(80%)와 인터넷/SNS(80.7%)를 통하여, 반면 교회 설교를 통해서는 34.6%에 그쳐

통일 및 남북문제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는데 영향을 미친 경로에 대해 묻기 위하여 ‘언론보도’, ‘인터넷/SNS’, 그리고 ‘설교’(개신교인만)를 나누어 물어보았다. 그 결과,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 모두 ‘언론보도’와 ‘인터넷/SNS’를 통하여 통일 및 남북문제에 대한 인식형성에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는데 전체의 약 80%의 응답률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통일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로와 그로 인한 영향력을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서 받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 ‘교회설교’를 통해 통일 인식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34.6%에 그치면서 대조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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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낙태, 동성애 관련

 1) 낙태 관련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
: 개신교인은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는 태아의 생명권에 더 큰 관심 보여

낙태 이슈에 대해서는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의 인식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을 뺏는 행위”라는 주장에 대해 개신교인 50.2%, 비개신교인 27.6%가 동의했다. 이는 불교 29.5%, 천주교 34.1%, 무종교 23.1%가 동의한 것과 비교해볼 때 개신교인의 동의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의률은 개신교인 중 남성(55.7%)과 60대(62.5%)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신앙도와 직분이 높을수록(목회자 73.9%, 중직자 68.9%) 높은 수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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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성애 관련 인식과 태도
: 절반 이상의 개신교인이 동성애를 죄로 인식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은 동성애에 대한 인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동성애는 죄”라는 주장에 대해 개신교인 58.4%, 비개신교인 25.0%가 동의한다고 답함으로써 33.4%p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반면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비개신교인이 48.2%로 개신교인 22.9% 보다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개신교인 중 동의률은 연령이 높고, 신앙생활이 활발하며 직분이 높을수록 높게 나타났다(기독교 입문층이 27.7%, 그리스도 인지층 52.8%, 그리스도 친밀층 77.6% 그리스도 중심층 81.3)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EA%B0%9C%EC%8B%A0%EA%B5%90%EC%9D%B8-%EC%A0%88%EB%B0%98%EC%9D%B4%EC%83%81-%EB%82%99%ED%83%9C%EB%8A%94-%EC%9E%98%EB%AA%BB-%EB%8F%99%EC%84%B1%EC%95%A0%EB%8A%94-%EC%A3%84-851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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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6 Nov 2019 17:5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