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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가 성경에 없다면서요?(가톨릭 신부의 답변)
종교인의 수다 > 상세보기 | 2018-12-08 01:45:04
추천수 16
조회수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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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가 성경에 없다면서요?(가톨릭 신부의 답변)
내용


개신교, 초교파, 삼위일체나 양태론은 신구약 성경의 바른 하나님 신관이 아니다, 삼위일체나 양태론은 로마 황제 시대에 만들어져서 가톨릭 교리가 되었다, 천국지옥



[Messenger 小考]


아래는 가톨릭 신부가 삼위일체 궁금증에 대한 질문 10가지를 답변해 놓은 자료입니다. 한국 개신교와 동일한 교리입니다.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전수시킨 것일까요? 아니면,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넘어온 것일까요? 전자라고 하는 분은 옛구습을 맹신하니까 제 정신 아닙니다. 후자라는 분이 그나마 거짓말 안한 분입니다. 신부 답변에서, 삼위일체는 정통인데 양태론은 이단사상이라고 언급한 부분도 개신교와 같습니다. 다만, 성호경(삼위일체 신앙고백의 근간을 이루는 간단한 십자 성호 형태의 기도, 모든 일 전후에 대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한다는 의미임)하느냐? 안하느냐?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구분하는 것만 다릅니다. 개신교의 사도신경도 가톨릭의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개신교의 삼위일체송은 외국 찬송가에다 삼위일체 제목과 가사를 붙여서 부르고 있는 것이지요. 유아세례나 삼위일체 세례도 가톨릭과 같아요. 축도(Benediction)는 사제와 평신도 구분을 위해, 베네딕트 신부가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개신교가 각색하여 목사와 평신도라는 용어로 영적 신분을 차별합니다.


가운 입고 하는 것도 가톨릭을 모방한 것이지요. 개신교 원적지(출생)는 로마 가톨릭입니다. 가톨릭에서 가출해서 해외(기록된 성경 말씀)로 이민갔으면, 독립(초기 그리스도 교회)해서 잘 살일이지, 걸핏하면 가톨릭 모방주의로 나가니 미칠 일입니다. 가톨릭이 좋으면, 개신교 사람들은 조용하게 개종하십시오! 가톨릭 사람들도 개신교가 좋으면 개신교로 개종하십시오! 가톨릭 신앙은 바벨론주의+성경이고, 개신교 신앙은 가톨릭주의+성경 입니다. 혼합주의는 바로 이런 것을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 한분 하나님께서 혼합주의를 묵인하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푸실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혼합주의를 끊고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만 의지하고 용서 구하면 죄사함 받습니다. 율법주의도 혼합주의 입니다. 가톨릭의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개신교에서 흡수하여 사용했음을 한국어로 전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단이라면서 입에 개거품 물고 뒤로 나자빠진다면, 예수 그리스도 한분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데, 스스로 영적 부자된 자의 천국행도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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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공유할만한 자료이기에 스크랩해서 게시합니다!!


[원제목] 삼위일체가 성경에 없는 말이라면서요? (삼위일체론에 대한 일문일답)


답변자: 000 00 0000 신부


우리는 매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고 성호경을 바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에게 당신을 삼위일체로 계시하시는 하느님에 대해 한번 알아보고, 나는 과연 어떤 하느님을 믿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① 삼위일체 교리를 그리스도교의 중심 교리라고 하던데 왜 그런 건가요? 그리고 많은 교리 중 삼위일체 교리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나요?


네! 좋은 질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삼위일체’란 말이 참으로 자주 쓰이지만 어렵게만 느껴지지요? 삼위일체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성부·성자·성령이라는 세 위격을 지니시면서, 동시에 한 분이시라는 신비를 뜻합니다. 그러나, 이 신비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하고 심오한 신비입니다. 삼위일체 신비가 중요한 이유는, 이 신비가 우리들이 믿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핵심이 되는 진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삼위일체 신비는 하느님 당신 자신과 관련된 가장 비밀스러운 신비로써, 다른 모든 신앙의 신비의 원천이며, 다른 신비를 비추는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② 교부들에 의해 삼위일체론이 더욱 발전되었다고 들었는데, 교부들은 왜 삼위일체론을 발전시켰나요?


교부들이 삼위일체론을 발전시켰던 것은 당시 초대교회가 겪었던 여러 어려움들 때문입니다. 교회는 점차 성장하면서 여러 이단들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때 교부들은 이단에 대항하여 교회의 전통 신앙을 지키고자 교리를 정립하게 됩니다. 삼위일체론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체계화되었습니다. 삼위일체론과 관련된 대표적인 이단으로는 ‘양태론’(樣態論, Modalismus)과 ‘성자종속설’(聖子從屬說, Subordinationismus)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이단들을 간단히 살펴보면, 양태론은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신데, 창조 때에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구원을 이루실 때는 예수님으로 모습으로 나타나셨으며, 그 이후에는 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는 주장입니다. 다시 말해,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세 가지 양태(모양)로 나타나셨다는 것이죠. 또한 성자종속설은 성자도 신이기는 하지만, 성부 하느님과 동일하지 않은, 하급 신이라는 주장입니다. 교부들은 바로 이런 이단들에 맞서 ‘하느님께서는 성부·성자·성령이라는 세 위격을 지니시면서 동시에 한 분이시다.’라는 삼위일체론을 체계화, 이론화시켰습니다.


③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삼위일체라는 것을 왜 드러내 보이셨나요?


하느님께서 삼위일체 신비를 드러내 보이신 이유는 바로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친구나 연인과 같이 믿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인간이 구원되기를 원하시며 구원의 역사(창조-성부, 구원-성자, 성화-성령) 안에서 삼위일체신 당신을 드러내 보이고 전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삼위일체 신비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당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④ 중고등부 교리교사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치려고 교회 서적을 보다가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를 보면 내재적 삼위일체를 알 수 있다.”라는 구절을 봤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가 없는데 무슨 뜻인가요?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 쓰는 용어 중에는 한자가 섞여 있는 것들이 있는데, 요즘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우선 ‘내재적 삼위일체’란 ‘성부·성자·성령이라는 세 위격을 지니면서 동시에 한 분이신 하느님의 내적인 신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경륜’(經綸)이란 ‘일정한 포부 아래 어떤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하는 일 또는 그 계획’을 말하는데, 이 말은 ‘구원’이란 단어와 결합되어 ‘천지창조 이전인 영원으로 부터 하느님의 의지 속에 감추어져 있던 구원의 계획’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를 보면 내재적 삼위일체를 알 수 있다.”는 말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역사 안에 개입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를 보면, 성부·성자·성령 하느님의 신비인 내재적 삼위일체 신비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⑤ 성부·성자·성령은 한 분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 보니, 혹시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그때그때 필요하신 모습으로 인간에게 오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단지 그 외적인 모습만을 바꾸어서 그때 그때 필요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 활동하셨다는 주장을 우리는 양태론이라고 합니다.(이에 관해서는 앞의 2번에 설명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부·성자·성령께서 동일한 신적 본체를 이루면서도 매우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위격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여기서 위격이란 단순히 역할이나 외적인 모습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인격적 주체의 현존성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따라서,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그때 그때 필요한 모습으로 인간에게 오신 것이 아니라, 한 분이시며 독자적인 위격을 갖고 계신 삼위일체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이라고 이해해야겠습니다. 

 

⑥ 주일학교를 다녀와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어떤 분이 성경 말씀을 나누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잠깐 얘기를 나누었는데, 삼위일체 교리는 교회에서 지어낸 것이라고 하면서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삼위일체라는 말을 성경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무척 당황했습니다.


네, 예전에 저도 여호와의 증인과 성경에 관해 토론을 벌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사람들도 삼위일체론이 옳다면 성경에서 그 근거를 대 보라고 하더군요. 신약성경은 아버지와 아들과 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선생님께서 질문에서 말씀하셨듯이, 삼위일체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은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삼위일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신약성경은 삼위일체 신비에 관한 기초적 증언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 19-20)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서에서는 성부와 성자의 관계, 성자와 성령의 관계, 성부와 성령의 관계가 여러 차례 증언되고 있습니다(참조: 5, 19-47; 10, 30; 14, 1-17, 26). 그리고 루카복음서(참조: 10, 21)와 바오로 서간(참조: 로마 8, 9-11; 1코린 12, 4-6; 2코린 13, 13; 에페 1, 11-18)에서도 분명하게 혹은 함축적으로 삼위일체론의 전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⑦ 삼위일체 교리에서는 성부·성자·성령이 동일한 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부께서 성자를 낳으셨다면 성부가 성자보다 더 높으신 분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셨으니 성령보다 성부와 성자가 더 높으신 것 아닌가요?


위와 같은 생각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방식의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생각의 틀 안에 하느님을 가두어 놓고 생각한 결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의 생각과 한계를 뛰어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논리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도 인간처럼 어떤 등급이나 서열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부·성자·성령, 이 세 위격 사이에는 어떠한 우열이나 등급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각기 독립적인 세 위격들로 구분되지만, 모두 동일한 한 분 하느님이십니다. 누가 높고 낮은가 하는 개념은, 인간적인 우열의 표현으로 하느님께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다만 삼위일체에서 구분되는 것은 출생시키신 분(성부)과 출생하신 분(성자), 그리고, 발출시키신 분(성부·성자)과 발출하신 분(성령)의 근원에 관한 관계뿐입니다. 이 관계 때문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호칭이 생겨난 것이고, 이것은 어떤 우열 순위가 아닌, 호칭의 순서로 생각해야 합니다.


⑧ 삼위일체론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면서 성부·성자·성령으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혹시 아이들의 이해를 돕는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요? 


저 역시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한 적절한 비유가 없을까 많이 고민해 왔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신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떤 예를 들면, 그 안에는 삼위일체와 맞지 않는 부분도 함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 많이 사용하는 ‘세 잎 클로버’, ‘삼각자’ 같은 설명이나 ‘아빠·남편·아들’, 혹은 ‘물·얼음·수증기’ 같은 설명들도 삼위일체 신비 전체를 나타내기에는 부족하며, 이단적으로 해석될 요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 잎 클로버나 삼각자 같은 설명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세 위격들이 전체의 부분을 구성하는 것처럼 설명함으로써, 그 자체로는 완전하지 못한 하나의 부분일 뿐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다양한 역할만을 강조하는 아빠·남편·아들의 비유나, 외적인 모습의 변화만을 가리키는 물·얼음·수증기 같은 비유들은 마치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필요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이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성부·성자·성령의 세 위격은 단순히 역할이나 외적 모습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고유한 인격적 주체의 현존성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⑨ 삼위일체는 신비기에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알 수 없는 것,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질 것을 알면서도 왜 밥을 먹는 것일까요? 또, 우주의 신비나 인체의 신비처럼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왜 연구하는 것일까요?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일화는 삼위일체 신비가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 잘 보여 줍니다. 성인이 어느 날, 삼위일체 신비를 골똘히 생각하며 해변을 거닐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곳에는 한 어린아이가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바닷물을 퍼 담고 있었습니다. 성인이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그 아이는 모든 바닷물을 그 모래 구덩이에 담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천사의 모습으로 변해 떠나가면서 삼위일체 신비를 머리로 이해하려는 것은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이렇게 알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는 일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역사 안에서 당신 자신을 삼위일체라고 계시하신 하느님을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우리는 하느님을 올바로 믿는 것일까요?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간다고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믿는 하느님께서 누구신지 알고, 믿고, 고백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껍데기가 아니라면 우리의 신앙고백은 삶을 통해 증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어떤 장식품 같은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자신이 믿고 따르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삼위일체의 신비를 온전히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은 아마 하느님을 직접 뵈옵게 되는 지복직관의 순간일 테지만, 우리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삼위일체 신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삼위일체 신비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⑩ 삼위일체 신비는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요? 그리고 이 신비를 삶 안에서 살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성호를 그으며 살아갑니다. 곧, 삼위일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매사를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이 삼위일체적인 삶이어야 함을 알려 줍니다. 삼위일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삼위일체 방식으로 사는 것이며, 이 말은 하느님처럼 사랑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성호를 긋는 행위를 통해 삼위일체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성호를 긋고 식사하는 것은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또 이 음식이 있기까지 수고해 준 모든 사람들, 그뿐 아니라 흙과 물과 공기와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느님과 함께 사랑의 식사를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식사를 한다면 음식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며, 남기거나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의 신비를 머리로는 다 깨닫지 못할지라도, 이런 사랑의 관계 안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몸으로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사랑의 관계 안에서 삼위가 일체이듯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노력할 때, 삼위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펌출처: http://bitly.kr/sK5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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